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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경호(프란치스코) OFM

~ 2016년 1월 16일 연중 제1주간 토요일 / 기경호 신부님 ~





연중 1주 토,

마르 2,13-17(16.1.16)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



The call of Levi






죄인과 사회적 약자를 품는 사랑의 소명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호숫가에서 군중들을 가르치신 뒤

 세관원인 레위를 부르시어 제자로 삼으시고(2,14),

그의 집에서 당신을 따르던 많은 죄인과 세리들과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십니다(2,15).

세리들은 이방인들과 접촉할 뿐 아니라 세금을 터무니없이 많이 매겨

부당이득을 취했기에 죄인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들은 직무상의 죄를 저지른 사회적 죄인인 셈입니다.

그 밖의 다양한 이유로 죄를 지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모두와 함께 음식을 먹고 친교를 나누십니다.

율법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이런 죄인을 제자로 삼으시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신 것은 명백히 불경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하자(2,16),

예수님께서는 의인이 아니라 영혼의 병을 앓고 있는 죄인을 구원하러 왔다(2,17)고

오신 목적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무엇을 새겨야 할까요?


첫째는 첫 제자 공동체에 인간적인 나약함과 죄성(罪性)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을 받아들여 함께하셨던 예수님처럼,

죄인을 받아들여 함께함으로써 선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 또한

 받아들여져야 하는 죄인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하고 거룩해지길 바라면서도

 자신의 어둠과 상처를 회피하고 배제하고,

남의 죄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의인인양 처신합니다.


또한 본당과 신심단체, 수도공동체에서도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형제자매를 판단하거나 은연중에 소외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의 공동체는 ‘죄인들의 거룩한 공동체’이지

무결점의 조합이 아니기에 그래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런 이들을 사랑으로 너그럽게 대함으로써

그들이 영혼의 병을 회복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새겨야 할 점은 예수님의 눈길과 발걸음이 ‘먼저’ 사회적 약자들과

 고통 받고, 영혼의 병인 죄로 번민하는 이들에게로 향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소외되고 상처받고, 영혼의 어둠을 지닌 사람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의 사랑의 회복에 집중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할 삶의 방향이요 행동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의인이 아닌 죄인들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으신 까닭은

그들이 하느님의 선(善)을 회복하여 온전하게 될 때

이 세상이 하느님의 나라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은 죄인의 어둠에 빛을 비춰주시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주심으로써

 하느님께 되돌아가게 해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일을 하고 대인관계를 맺으며 바삐 움직이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사와 발걸음은 예수님처럼 의인이나 건강한 이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무런 결핍이나 어려움이 없는 이들이 아니라,

 '먼저' 죄인들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영혼의 병을 앓고 있다면

나를 어루만져주실 주님 앞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오늘도 의인이 아니라 아파하고 힘들어 하며 고통 중에 살아가는

 나 자신과 죄투성이인 이 사회 모두를 위해 오신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품어주는 훈훈한 날이길 희망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