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3일 일요일 묵상과 기도
<성무일도> 사도 10,40-43
하느님께서는 예수를 사흘 만에 다시 살리시고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증인으로 미리 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자기를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자로 정하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모든 예언자들도 이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응송
이날은 주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알렐루야.
<청원기도>
그리스도와 함께 당신 안에 숨겨져 있는 우리의 생활을 세상에 빛나게 하시어,
― 우리의 생활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미리 알려 주게 하소서.
◎ 주여, 그리스도의 빛으로 우리를 비추소서.
<오늘의 복음 말씀> 요한 20,26-29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영적 독서> 성경말씀을 통해 부정적 감정극복하기/두려움, 조이스마이어지음, ’문종원 옮김
4. 하늘나라의 열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라
만일 직원이 사장에게 정당한 휴가 신청을 했는데도 허가가 나지 않는다면 그 직원은 곧 사장에게 가서 “혹시 제 신청서를 잃어버리셨나요? 언제쯤 제 정당한 몫을 받게 될까요?” 하고 물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신청서를 제출했는데도 우리가 믿음 안에서 구한 것을 얻지 못했다면, 주님께 가서 “아버지, 제 신청서를 잊으신 것은 아닙니까?” 하고 물을 권리가 있다. 그것은 염치없는 짓이 아니라 바로 믿음이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꼭 지켜주신다는 것을 믿고 있다는 것을 주님께 보여드리는 일이니 오히려 주님께 공경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해본 적이 없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너희는 기쁨에 넘칠 것이다(요한 16,24).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쁨으로 충만하기 위해서 당신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청하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요즈음 믿는 사람들이 충만한 기쁨의 생활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기도가 부족한 이유는 하느님의 사람들이 기도를 통해서 해야 할 일들을 세속적으로 하려 하고,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위해 자신들을 통해 일하시기를 청하기 때문이다.(693)
사진: 이태리 뽀지오부스토네(성프란치스코 은둔소)
Photo: Italy Poggiobustone San 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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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3일 부활 2주일 강론
고 도미니코 신부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제자들에게 건네는 평화의 메시지와 함께 성령과 믿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의 증언을 듣고도 제자들은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 걸고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방안에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 이 두려움은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로 극복됩니다. 이 평화는 주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불신과 의혹은 평화의 인사만으로 아직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 평화를 건네는 분이 정말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그리스도인지 의심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손과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옆구리를 보여주십니다. 이 순간 제자들은 기쁨에 차서 불신에서 불완전한 믿음을 거쳐 완전한 믿음에 도달하게 됩니다.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숨을 내쉬며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이미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넘겨주고 또 심장에서 물을 흘려 보내실 때 온 세상에 주어졌지만,부활하신 후 주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당신의 숨을 통하여 직접 제자들에게 성령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성령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그뒤를 잇는 교회 공동체를 거룩하게 정화시키십니다. 이 구절은 가톨릭 교회에서 고백성사의 근거가 됩니다.
기쁨과 평화,성령으로 충만한 제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지 못한 토마는 불신과 의혹의 어둠에 갇혀 있게 됩니다. 그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메시지도 듣지 못했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뵙지도 못하였던 것입니다. 동료 제자들은 마리아의 고백을 반복하며 “우리는 주님을 뵈었다”고 말하며 부활 신앙을 그에게 전해 주려 합니다. 그러나 토마는 조건이 붙은 불완전한 믿음을 드러냅니다. 토마는 부활의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지만,예수님의 시신에 집착했던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의 부활한 몸을 체험하고자 합니다.
여드레 뒤에 예수님이 또다시 잠긴 문을 통과하여 토마와 다른 제지들이 함께 있는 방안에 나타나십니다. 놀랍게도 그분은 토마가 바라는 조건을 충족시켜 주십니다. 토마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주님의 옆구리에 넣어 본 순간 다음과 같은 참된 신앙 고백을 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토마 사도의 이 대답은 그의 완전한 믿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리스도에 관한 요한복음서의 가르침 전체를 요약 합니다. 로고스와 하느님 사이의 관계,“나다”(에고 에이미)의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의미, 당신과 아버지가 하나라는 말씀 등을 모두 수렴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토마의 이 같은 완전한 고백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을 만나뵙지 않고 믿는 사람이 더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고 더 복된 사람입니다. 그러한 믿음은 주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은총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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