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수녀, 교회학자
축 일-10월 1일
불운했던 어린 시절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소화 데레사)는 1873년 1월 2일 프랑스 알랑송에서 아버지 루이 마르탱과 어머니 젤리 게랭 사이에서 태어났다. 9남매 가운데 막내였던 데레사는 부모님과 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그러나 다섯 살 때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다음,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성녀는, 그 이전과 달리 수줍고 내성적인 아이가 되고 말았다.
열 살이 될 무렵, 당시 엄마처럼 따르던 둘째 언니 폴리나가 리지외 가르멜수녀원에 입회했는데, 이 역시 소화(小花) 데레사에게는 더 큰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이때 성녀는 심리적 충격으로 ‘이상한 병’을 앓기 시작했다. 그러나 1883년 5월 13일 성모님의 발현을 체험한 성녀는 기적적으로 낫게 되고 이듬해 첫영성체를 했다.
열다섯 살에 가르멜회 수녀가 되다
1886년 성탄절에 성녀는 특별한 은총을 받았다. 성녀는 「자서전」에서 이를 “완전한 회개의 은혜”라고 불렀는데, 이때부터 성녀의 마음에는 애덕이 더욱 깊이 깃들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자 자신을 잊을 줄 아는 이타적 사랑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강렬한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낀 소화 데레사는 열다섯 살임에도 여러 기회를 통해 바이유의 주교와 당시 레오 13세 교황에게 가르멜수녀원에 입회할 수 있는 허락을 청한다.
결국 두 분으로부터 허락을 받은 소화 데레사는 1888년 4월 9일, 리지외 가르멜수녀원에 입회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인 1889년 1월 10일 착복과 동시에 수련을 받아 1890년 9월 8일 수도서원을 했다.
1893년부터 성녀는 부수련장으로서 수련장을 도와 임종 전까지 수련자들을 동반하는 소임을 맡게 된다. 이 소임을 하면서 성녀는 자신의 독창적 영성을 담고 있는 “작은 길”을 몸소 실천하고 가르쳤다. 1895년 6월 9일 삼위일체대축일에 성녀는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에 자신을 제물로 봉헌했으며 바로 그날 “예수께서 얼마나 사랑받기 원하시는지를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잘 깨닫는 은혜”(「자서전」 A)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닷새 뒤에 “사랑의 상처”라고 하는 신비적 은총을 받았다.
이듬해인 1896년 사순절에 성녀는 첫 번째로 각혈을 하게 되는데 이로써 자신에게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이러한 육체적 고통에 더해 성녀를 괴롭힌 것은 신앙을 거스르는 유혹이었다. 이러한 신앙의 어둔 밤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성녀는 이 모든 것을 신뢰와 사랑 안에서 받아들이는 가운데 자신이 발견한 “작은 길”을 끝까지 걸어갔다. 이 마지막 시기에 성녀는 예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사도적 열성, 그리고 “좋으신 하느님”을 향한 자녀적인 의탁의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죽은 뒤에도 천상에서 영혼들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강한 원의를 드러냈다.
성녀는 1897년 9월 30일, 스물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 뒤 1923년 4월 29일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시복되고 1925년 5월 17일 시성되었으며, 1927년 12월 14일에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과 함께 선교와 선교사들의 주보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리고 서거한 지 100주년이던 지난 1997년 10월 19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교회박사로 선포되었다.
성녀는 살아생전 3편의 자서전 원고와 266통의 편지, 그리고 54편의 시, 21편의 기도, 8편의 희곡을 남겼다. 그 가운데 특히 「자서전」은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현대인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고 “영적 어린이의 길”을 걷게 하는 데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영적 어린이의 길을 발견하다
성녀는 어려서부터 대성인이 되고자 하는 대담한 원의를 품었다. 소화 데레사에게 성인이 된다는 것은 사랑의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었다. 그것은 예수님을 온전히 사랑해 드리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착복을 준비하는 피정에서 이렇게 자신의 원의를 말한 바 있다. “저는 예수님을 무척 사랑하고 싶습니다! … 이제껏 사랑받으신 것보다 훨씬 더 사랑해 드리고 싶습니다!”(편지 74)
그러나 사랑의 길이란 자기비허(自己脾虛)의 길이자 완전한 내적 가난의 길이다. 성녀는 이 여정 속에서 자신이 작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체험했으며 이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받아들이는 작은 자가 되었을 때, 성녀는 “누가 작은 자이거든 내게로 오라.”(잠언 9,4 참조)는 말씀과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귀여워하는 것같이 나도 너희를 위로하고 너희를 품에 안고 무릎에 올려놓고 흔들어주겠다.”(이사 66,12-13 참조)는 말씀을 통해 특히 작은 자에게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에 성녀 역시 사랑으로 응답해 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그분께 맞갖은 사랑이 없음을 깨닫고 이내 하느님의 신적인 사랑을 청했다. 그 사랑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신뢰하고 의탁할 때, 그분께서 우리 마음 안에 부어주시는 사랑이다. 이런 하느님의 사랑을 얻고자 하는 길, 이 길이 바로 신뢰와 의탁의 “작은 길”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중에 “영적 어린이의 길”로 불리게 된다. 이 길은 성성에 나아가는 과정에서 인간이 자신의 노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무엇보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에 기대는 것으로, 성녀는 이를 고층건물을 곧바로 오를 수 있는 지름길이란 의미에서 “영적 엘리베이터”라 부르기도 했다.
교회의 심장이 되다
이러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깊이 체험한 소화 데레사는 그 사랑에 온전히 응답하고자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하며 이 세상을 위해 군인, 사제, 사도, 학자, 순교자 그리고 선교사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동시에 이 모든 것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성녀는 이러한 자신의 모든 원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으며, 결국 모든 것을 움직이는 힘은 “순수한 사랑”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교회의 모든 지체에 영적인 힘과 빛을 주는 사랑으로서 교회의 심장이 되고자 했다. 그리고 이 사랑이 되고자 평범한 일상 속에서 숨은 희생의 삶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자신을 봉헌하였다. 더욱이 성녀는 선교에 대한 커다란 열망을 갖고 있었다. 이는 훗날 성녀를 선교의 주보성인이 되게 했다.
마지막으로, 임종하기 전 병중에 있을 때 성녀는 깊은 신앙의 어둔 밤을 거치게 되는데, 당시 성녀는 그 어둠 속에서 신앙을 잃어버린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필요한 모든 사람과 연대하고자 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구체적인 삶의 증거를 통해 현대인들이 심오한 복음의 메시지에 쉽게 다가서게 해주었다. 그것은 인간의 나약함과 죄를 넘어 오시는 자비의 하느님을 향한 신뢰와 의탁으로의 초대였다. 성녀는 이를 통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순수한 사랑을 일상의 “작은 것들”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누구나 일상도(日常道)를 통해 성성에 나아가도록 가르쳤다.
윤주현 베네딕토 - 가르멜수도회 수도사제. 2001년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스페인에서 가르멜 영성을 전공하고 아빌라신비신학대학원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은총론」, 「교회론」, 「신학적 인간학」을 비롯해 가르멜 총서 시리즈 등 다양한 저서, 역서,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로서 은총론과 영성생활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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