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조Correggio (1489-1534) 탄생(거룩한 밤) Nativity (Holy Night)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1528-1530 100.98 x 74.02 inches [256.5 x 188 cm] 드레스덴 미술관Gemaldegalerie, Dresden, Germany 코레조의 이 작품은 예수 탄생을 그린 그림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땅에서는 목동과 하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젊은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사랑이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후경에는 나귀를 돌보는 요셉의 모습이 보인다. 어두운 가운데 화면을 신비롭게 밝혀 주는 빛은 작은 아기에게서 나오고 있다. 이 신비로운 빛 때문에 목동은 모자를 벗으면서 경의를 표하려 하고 마리아 쪽의 하녀는 눈이 부셔 미간을 좀 찡그리고 있다. 인공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이것은 후대의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대가, 카라바조를 예고한다) 명암법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사건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고조시켜준다. 예수는 아주 작고 여리지만 그 빛으로 인하여 이 그림의 주인공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그림에는 정말 캐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썩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사들이 내려와야 하는 우주적 사건이지만 그 성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목격자들은 아주 적고 또 소박한 사람들뿐이기 때문이다. 카라바조 얘기가 나온 김에 이 화가가 같은 주제로 그린 그림을 한 번 보자. 카라바조Carravaggio(1571~1610) 성 프란체스코와 성 로렌초가 함께 있는 탄생 Nativity with St Francis and St Lawrence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268 x 197 cm, 1609 1969년까지 산 로렌초, 팔레르모(유실) San Lorenzo, Palermo (lost) 이 그림은 원래 카라바조가 만년을 보낸 시칠리아의 팔레르모에 있는 산 로렌초 교회에 있던 것이었는데, 1969년 도난 당했다. 말년의 그의 그림들은 한층 깊은 어둠과 우울함을 띄고 있는데(그것은 그의 개인적인 불행과 관계가 있다) 이 그림도 예외가 아니다. 코레조의 것처럼 인공적인, 연극의 스포트라이트 같은 한줄기 빛이 왼쪽 위에서 떨어져 이 어두컴컴한 외양간에서의 사건을 비추고 있는데, 두 그림의 분위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뭇 다르다. 코레조의 탄생이 고요한 환희라면 카라바조의 그것은 우울한 체념의 분위기가 흐르며, 갓 태어난 예수는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이 그림은 훗날 예수와 마리아가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될 사건, 예수의 죽음과 마리아의 슬픔, 즉 피에타와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 이 사건에 입회한 이들은 동시대의 인물들이 아니라 후대의 성인들이다. 두 성인은 각각 이 그림이 걸린 교회(산 로렌초)와 교단(프란체스코회)을 상징한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는 팔에 ‘하느님의 영광’이라 쓴 띠를 두르고 영광스러운 탄생을 축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에 환희의 분위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그림은 또다른 분위기이다.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 신비로운 탄생Mystic Nativity 캔버스에 템페라와 유화Tempera and oil on canvas, 1500 내셔널 갤러리, 런던National Gallery, London 예수 탄생을 묘사하는 도상은 보통 코레조 그림처럼 나타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그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르다. 일단 보티첼리는 보통 따로 그려지는 양치기들의 경배와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한 화면에 집어넣었다. 오른쪽에서 천사의 인도를 받는 세 사람이 양치기들이고 왼쪽 사람들이 동방박사들이다. 천국을 상징하는 금빛 창공이 열리고 천사들은 올리브 가지와 성모를 찬양하는 문구가 적힌 두루마리를 들고 원무를 추고 있고 아래쪽에는 악마들이 황급히 땅 속으로 도망치는 가운데 천사와 인간들이 포옹하고 있다. 그들의 올리브 가지에 둘러진 두루마리에는 인간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루카 복음서의 구절이 적혀 있다. 그림 위쪽에 보티첼리는 그리스 문자로 그림에 대한 설명을 적어 놓았다. 나, 알레산드로는 이탈리아의 분쟁 속에서, 그 때의 반이 지난 때, 요한의 11번째 예언이 이루어지는 때, 계시록의 두번째 환난 속에서, 악마가 3년 반동안 풀려난 1500년 말 이 그림을 그렸다. 12번째 예언에 따라 그가 묶인 후 우리는 이 그림에서처럼 (도망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다소 수수께끼 같은 이 설명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단순한 예수 탄생의 그림이 아니라 계시록의 예언이 실현된 새 세상의 탄생을 알리는 그림이란 것이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그때의 반이 지난 때(half-time after the time)’라는 구절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1500년’, 즉 첫번째 밀레니엄(1000년)이 지나고 반(500년)이 지난 때를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이 당시 사람들은 1500년에도 예수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1948년 사보나롤라의 처형과 프랑스인들에 의한 피렌체의 점령 들을 겪으면서 보티첼리는 교회의 쇄신과 평화가 깃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그리하여 이 내면적인 그림은 이 시대 이탈리아 화가들의 자연주의적 원근법과는 상관 없이, 상당히 중세적 구도를 갖고 있다. 즉 중요한 인물인 마리아와 예수는 비례에 맞지 않게 크게 그려졌고, 특히 아기 예수는 마리아에 비해서도 더욱 크게 그려졌다. 계절이 겨울이 아니라 봄이나 여름인 듯 하고 시간도 밤이 아니라 아침인 것은 새 시대의 시작에 관한 그림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마태오 복음서 2장 1절~12절 이른바 ‘동방박사의 경배’라고 일컬어지는 사건에 대한 복음서의 설명이다. 우리말로 동방박사라고 번역되는 ‘magi’는 원래 고대 메디아Media 왕국의 한 종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메디아는 이란계 사람들이 세운 국가로 현재 이란의 북서부와 이란 북쪽과 서쪽 땅을 포함하는 지역이었다고 전해진다. 마기는 메디아에서 종교 의식과 장례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의식에는 주술적인 것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므로 이 말은 영어에서 마술, 마법을 의미하는 ‘magic’의 어원이 되었다. 성서에서 그들이 별을 보고 왔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천문에도 밝은 사람들이었을 것 같다. 미술에서 이들은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사람들로 나타나고 보통 그들 중 한 명은 흑인이다. 피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동방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1618-1619 96 3/8 x 127 7/8 inches (245 x 325 cm) 뮈제 데 보자르, 리용Musee des Beaux-Arts, Lyon 루벤스의 그림에서도 그런 전통적 동방박사들을 만날 수 있다. 배경은 누추하지만 여왕 같은 위엄과 아름다움을 갖춘 성모와 아기 예수가 왕과 같은 차림새의 인물들을 맞아 축복을 내리고 있다. 모피와 벨벳, 비단으로 지은 그들의 화려한 의상은 경배자들의 신분을 나타내고 터번은 그들이 중동 지역에서 왔음을 암시한다. 이 모든 화려한 인물들에도 불구하고, 또 마리아와 아기가 한쪽으로 쏠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모자가 그림의 중심으로 느껴지는 것은 역시 화면에서 가장 밝은 빛을 받고 있는 것이 성모자이기 때문이다(마리아의 흰 의상도 한몫을 한다).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1445-1510) 동방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1475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Galleria degli Uffizi, Firenze 보티첼리가 ‘신비로운 탄생’을 그리기 훨씬 전에 그린 ‘동방박사의 경배’를 보자. 비교적 젊을 때 그린 이 그림은 ‘신비로운 탄생’보다 세속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 그림은 원래 금융업으로 재산을 모았던 구아스파라 델 라마라는 사람을 위해 그려진 것으로 그는 오른쪽에 모여있는 사람들 중 흰머리에 담청색 가운을 입고 감상자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다. 종교적 그림에 주문자의 초상을 넣는 것은 이 시대엔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곧 몰락을 경험한 주문자보다 더 유명한 인물들 또한 이 그림에 있으니 보티첼리의 후원자들인 메디치 가문 사람들이다. 아기 예수의 발을 만지고 있는 동방박사는 코시모 데 메디치이고 중앙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무릎 꿇은 사람은 그의 아들인 피에로, 오른쪽 전면에 있는 젊은 남자는 로렌초 일 마니피코로 보인다. 제단화로 주문된 이 그림에서 이렇게 많은 그 시대 피렌체 사람을 본다는 것, 더욱이 벼락부자가 된 주문자가 권력자인 메디치 가문에 아첨하는 듯한 이런 구성을 취했다는 것은 우리에겐 다소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당시엔 별로 이상하게 여겨지지는 않은 것 같다. 허물어진 담 뒤에 있는 바위를 옥좌 삼아 앉은 성모는 보티첼리의 스승 프라 필리포 리피Fra Filippo Lippi의 성모들과 많이 닮았다. 인물들이 모두 15세기 이탈리아인들의 복장을 하고 있어 세속적 분위기가 더 강하다. 하지만 이 그림이 특히 유명한 것은 맨 왼쪽에 있는 보티첼리 자신의 초상 때문이다. 델 라마보다도 한결 강렬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는 이 젊은 화가의 초상은 명성을 얻기 시작한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1450-1516) 동방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 나무에 유채Oil on wood, c.1510 54.33 x 54.33 inches [138 x 138 c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Museo del Prado, Madrid 마지막으로 보스의 그림을 보자. 앞의 두 그림에 구경꾼들이 많았던 데 비해 이 그림에선 위쪽으로 전원과 도시 풍경이 넓게 펼쳐진 가운데 왼쪽의 농부들 몇이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을 뿐이다. 몇 명은 이 신기한 장면을 더 잘 보기 위해 지붕에까지 올라갔다. 기묘하게도 이들의 얼굴에는 경외의 표정보다는 노골적인 호기심이 드러나 있을 뿐이다. 보티첼리보다 훨씬 후에 그려졌음에도 이 플랑드르 화가의 그림에는 중세의 분위기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중요 인물인 마리아와 지붕 위 구경꾼들의 비례가 맞지 않는 크기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무릎 꿇은 붉은 옷을 입은 왕은 선물로 이삭의 희생을 조각한 것을 마리아의 발치에 내려놓았다. 이것은 앞으로 예수가 치를 희생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경건함 속에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앞의 그림들과는 다른 등장 인물들 때문이다. 이 이상한 한 무리의 사람들은 오두막 문 뒤에 숨어서 이 광경을 훔쳐보고 있다. 벗은 몸에 붉은 가운만 입은 인물은 왕관을 쓰고 있어서, 아마도 염탐하러 온 헤로데 왕일 것이라는 짐작을 낳게 한다. 또는 적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투구에는-사실 이것은 회색 가운을 입은 두번째 왕의 것인데-악마가 그려져 있어 이 경배하는 왕들의 이교도 신분을 나타내고 있다. 원경에 보이는 이 이교도 왕들의 군대는 마치 전투를 하려 하는 것처럼 서로를 향해 달려간다. 예수 탄생을 암시하는 신비로운 별이 푸르스름한 예루살렘의 성벽 위에 떠 있지만 그 희미한 붉은 빛은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을 씻어 주지 못한다. 자세히 뜯어 보면 볼수록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다. 이 성스러운 사건의 곳곳에 숨어 있는 악의 상징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도 보티첼리의 ‘신비한 탄생’에서처럼 예수 탄생 후 1500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창궐하는 악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메시아의 재림을 기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톨릭 성화, 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브라함과 멜키체덱 ~ (0) | 2016.11.04 |
---|---|
~ 기적의 메달 / 류해옥 신부님 ~ (0) | 2016.11.04 |
~ 성 아우구스티노 와 성녀 모니카 / 이종한(요한) 신부님 ~ (0) | 2016.10.27 |
++ 두오모 대성당 / 이태리 ++ (0) | 2016.10.23 |
~ 고성소에 내리신 그리스도 / 이종한 (요한) 신부님 ~ (0) | 2016.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