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성화, 미술

~ 기도하는 수도자 / 이종한 (요한) 신부님 ~

기도하는 수도자들.jpg

제목 : 기도하는 수도자(1720)
작가 : 알렉산드로 마냐스코(Alessandro Magnasco: 1667–1749)
크기 : 켐퍼스 유채 : 53.6 X 43.9cm
소재지 : 켄트 반 스호네 쿤스테 미술관(Museum voor Schone Kunsten)


수도생활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종교에서 표현되고 있는 특수한 현상이다.

가톨릭교회는 어느 종교 보다 수도생활의 내면성 표현에 있어 더 다양하면서도

시대 적응과 본질적 삶에 접근이라는 양면성의 보존에 노력했다는 것이 중요한 특징으로 등장하고 있다.

수도생활은 하느님만을 외골수로 찾겠다는 열망에서 시작되었기에 항상 인간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차원 높은 생활이나, 높이 오를수록 떨어지기도 쉽다는 인간 사회의 법칙처럼 부패의 위험 역시

항존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생선이 썩을 때 머리부터 썩는다는 격언대로” 수도생활 역시 세상 풍조와 연결되어 사명을 잃고 나면

세상 어떤 집단 못지않고 위선적이고 부패한 모습을 띄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현실이었기에

수도생활이 이런 부패에서 헤어나기 위해 자기 혁신의 시도를 끊임없이 하면서

정화의 노력을 했기에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인 카말돌리 수도회는 베네딕토 수도회의 개혁 세력에 속하는 것이다.

“기도하고 일하라”는 모든 수도생활의 근본 요청을 못도 삼아 시작된 수도회이지만

이런 삶을 통해 재산이 축적되면서 수도자들이 이완 나태된 삶에 맛들여 부패해질 때,

1012년경 성 로무알드가 베네딕토 정신대로 살고자 이탈리아 아레초 근처 카말돌리에 수도 공동체를 세웠다.

안일과 타성에 빠진 삶을 사는 수도자들에 대해 실망했던 사람들은 가뭄에 생수를 찾듯

이런 수도회로 몰려오게 되면서 수도생활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 수도생활을 쇄신했다.

이들은 모든 것이 갖추어진 편리한 삶의 환경인 대수도원 보다는 “사막으로 나아가자”라는 구호로 시작된

초세기 수도자들처럼 험한 산속이나 외딴 숲속으로 은둔해서 힘든 노동 속에서

하느님만을 외골수로 찾는 삶을 사는 것을 목표로 살기 시작했다.

이런 목표의 삶을 살기로 시작한 세 명의 수도자들을 통해 작가는 수도생활의 소개와 함께 사람다운 삶,

더 고귀한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들에게 닥칠 수 있는 현상을 제시하면서 크리스천적인 삶에서

향기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수도자들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사본 -기도하는 수도자들1.jpg

이들은 껍데기만 남아 안일하고 타성에 빠진 기성 수도회의 현실에 실망해서

수도자 다운 영웅적인 삶을 살고자 결심하고 깊은 산속에 은거했다.

편리한 생활 조건이나 다른 모든 것에서 제외된 철저한 고독의 생활,

모든 것이 불편한 가운에서 믿을 곳은 오직 하느님 밖에 없다는 그런 환경으로 나아가는 여정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결심을 하고 들어온 세 수도자이지만 이 생활은 생각처럼 쉽지 않는 어려운 생활임을 알게 되면서

이들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일 왼편에 수도자는 팔을 펼쳐든 격렬한 몸짓으로 저항의 표현을 하고 있다.

그가 이런 생활을 선택하기 전 기성 수도회의 안일과 나태한 삶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수도자 다운 삶을 살고픈 마음으로 선택했지만 어려움 앞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작가는 여기에서 비단 수도자라는 특수 환경에서 보일 수 있는 어떤 양상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시련의 과정을 보이고 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결심한 인간에게는

그 결심이 더 고귀한 것일수록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이것이 불편함으로 다가오면서 갈등을 느끼는 현상에 직면하게 된다.

수도자들에게는 이것이 더 극명히 드러날 수 있기에, 두 손을 들고 울부짖는 수도자의 모습은

바로 우리 삶의 중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카말돌리 수도자들은 베네딕토 수도자들이 부를 축적하면서 노동에 대한 기피현상과

사치한 생활에 빠지는 것을 거부하는 뜻으로 아주 거친 환경에서 흰 수도복을 입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세기 안료가 비싼 처지에서 베네딕토 수도자들의 검은 수도복 역시 현재의 안목에선 이해가 되지 않지만

가난의 정신에 위배될 수 있기에 가난에 대한 극단의 표현으로 여름에는 면,

겨울엔 양모와 같은 것을 입음으로 가난에 대한 증거를 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런 거친 옷을 입으며 시작한 수도생활이지만 어려움이 닥치자

이 수도자는 마음의 평화를 잃고 갈등의 현실에 빠지게 된다.

제일 오른편의 수도자는 바위를 기대고 아예 누워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이다.

한마디로 자기 안에 어떤 희망도 없으니 포기와 좌절상태에 빠진 모습이다.

수도생활을 하면서 묵시록에 나타나고 있는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묵시3,16)”삶을 살아가는 수도자의 모습이다.

개혁과 혁신의 기치로 시작된 삶이 다시 자기 안에 안주하는 생명 없는 모습으로 전락된 실패한 수도자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 역시 오늘도 사회 여러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도피와 좌절을 살아가는 인간 삶의 어떤 유형이다.

작가는 세상에서 예외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수도자의 삶의 모습을 통해 보다 가치 있는 삶을 갈망하는

인간들의 삶을 새로운 시작으로 바라보게 초대하고 있다.

가치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은 더 어려운 외부적인 제약과 내적 갈등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수도자의 모습을 거친 붓처리를 통해 광풍 속을 걸어야 하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은 중간에서 십자가 앞에 손을 대고 기도하는 수도자의 모습이다.

이 수도자 역시 새롭게 선택한 수도생활 앞에서 닥치는 여러 어려움을 당하면서 갈등에 대한 유혹이나

포기에 대한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수도자는 다른 수도자들처럼 인간적 약점에서 면제된 사람은 아니라,

주님께 굳건히 매달림으로 자기 초심을 유지하고자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즉 수도생활의 관건은 더 이상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히는 것만이 아니라

주님께 간절히 매달릴 때 가능하다는 것을 이 수도자를 통해 보이고 있다.

즉 우리 삶의 어떤 순간에도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거기에서 힘과 위한을 찾을 때

자신의 약함을 이기고 발전의 삶을 살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본 -기도하는 수도자들2.jpg

이 수도자 앞에는 골고타로 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가 있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신앙의 눈을 가진 사람에게만 보일 수 있다는 뜻으로 주위가 희미한 가운데 세워져 있다.

화면 전체가 어두운 가운데 이 장면은 특히 더 어둡게 그려진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도자의 삶을 붙들어 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바로 십자가에서 나오는 법인데

이것은 현실적으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특성을 표현하고 있다.

수도생활의 어려움에 갈등하고 좌절하면서 바라봐야 할 것은 십자가인데

이것은 실재 삶에서 희미하게 나타나기에 십자가를 찾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십자가는 주님께서 골고타에서 달려 계신 십자가이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그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가장 괴로운 것은 아버지께서 자기를 버리신 게 아닌가라는 의혹이었다.

이것은 주님께 있어 십자가 사건에서 겪어야 했던 모든 고통을 합친 것 보다도 더 아픈 것이었다.

“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당에 덮여 오후 3시 까지 계속되었다.

오후 세 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라고 부르짖으셨다.

이는 저의 하느님 ,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뜻이다.(마태 27,45-47)

카말돌리 수도회는 특별히 고독과 침묵을 강조하는 수도회이다.

처음 수도생활을 시작하는 초심자들은 여러 수도자들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수도생활을 익히다가

어느 경지에 도달했다는 상태가 되면 혼자 생활하게 하는 수도회이다.

하느님만을 철저히 찾기 위해 혼자 생활하는 수도자들은 인간적인 한계로 여러 실망과 유혹에 빠질 수 있는데

이것을 극복하는 지혜는 바로 골고타의 주님을 골똘히 생각하는 것이다.

골고타의 주님을 생각하면 자기의 고독이 오히려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의 주소 확인이 되면서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듯이

비록 수도생활을 하는 수도자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갈망하는 사람은 바로 이런 수도자의 삶에서 같은

교훈으로 유혹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어둡고 거친 기법을 사용해서 수도자의 모습을 그리면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신앙의 지혜를 선사하고 있다.

십자가가 서 있는 옆에 화면에서 가장 밝은 빛이 드러나고 있다.

이 밝은 빛은 십자가의 어둠을 신앙으로 극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빛의 새로운 모습이다.

인간다운 삶, 보다 고귀한 삶을 갈망하는 인간에게 주님의 십자가가 주는 교훈의 중요성을 극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가치는 단순한 신앙의 가치가 아니라 인간성을 고양시키는 데 큰 힘과 지혜가 되는 것임을 이 작가는 제시하고 있다.

- 이종한(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