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4월18일
복녀 강생의 마리아
Bl. Marie de l’Incarnation
Bl. MARIE of the Incarnation
Beata Maria dell’Incarnazione (Barbara Avrillot) Carmelitana
Born:1 February 1566 at Paris, France as Barbe Aurillot
Died:18 April 1618 at Pontoise, France of natural causes
Beatified:5 June 1791 by Pope Pius VI
Canonized:pending
Maria = amata da Dio, dall’egiziano; signora, dall’ebraico
= mistress from God, dall’egiziano; mrs., dall’ebraico
마리아는 히브리어 Myriam에서 유래된 말로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여자’란 뜻이다.
바르바라 아카리는 고위 관리의 딸로서, 17세 때에 베드로 아카리와 결혼하였는데,
남편은 신심이 깊고 또 애덕을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마리아는 6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들 중에서 3명이 가르멜 수녀가 되었고, 3명의 아이들은 사제가 되었다.
그러던 집안에 큰 재앙이 생겼던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가톨릭 단체의 뛰어난 후원자였는데,
불행하게도 막대한 재정적 책임을 져야하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헨리 4세가 즉위하자마자, 그는 파리에서 추방되고, 재산은 몰수당하였다. 일종의 모반 혐의였던 것이다.
1613년,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가르멜회 입회를 청하여 허가 받았으나 만 4년을 살았을 뿐이다.
그녀는 기혼자로서 뛰어난 성덕의 소유자로 인정 받았던 때문이다.
이때 그녀는 "강생의 마리아"란 수도명을 받았고, 앙미앙 수녀원에서 지냈는데,
이곳에서는 그녀의 장녀가 있는 곳이었다.
그녀가 임종하는 자리에서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주님, 제가 저지른 온갖 나쁜 표양을 용서해 주십시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가르멜 수도회 역사
가르멜은 이스라엘 서북부, 갈릴래아 지방에 속한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해발 546m의 산 이름이다.
기원전 922년경 다윗 왕국이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으로 분할된 후
북부 이스라엘 왕국의 배교를 막기 위해서 활약한 예언자들 중 엘리아 예언자가,
바알의 거짓 예언자들과 대결을 벌인 곳이 바로 가르멜 산이다.
’나는 야훼의 사랑에 불타 있노라’ 하신 엘리아의 정신을 따라,
이미 구약시대부터 가르멜 산에는 개별적으로 은수생활을 하던 은수자들이 있었는데,
12세기 중엽에 와서 팔레스티나 성지 회복을 위해 십자군 전쟁에 나선 경건한 신자들 중 일부도
성지 회복 후에도 가르멜 산에 남아
자신을 성모님께 봉헌하여 은수자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공동체적인 삶의 모습을 갖추게 되어, 13세기초 (1206년과 1214년 사이)에
당시 예루살렘 총대주교였던 성 알베르또 아보가드로 주교에게서 수도회 규칙서를 받아
은수자적 수도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1226년, 교황 호노리우스 3세로부터 수도회 회칙 첫 인증 받음).
이후 회교도들의 팔레스티나 재침공을 피해 1230년대에 유럽으로 수도회가 이주하게 되었고,
이주와 더불어 당시 유럽의 환경에 맞게 기본적인 은수적 생활을 고수하면서도
시대적 요청에 따른 사도직 활동을 수행하게 되었고,
1247년에는 교황 인노첸시오 4세로부터 원초적 은수정신과 아울러
사도직 실천을 겸비한 탁발수도회로 최종 승인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16세기 스페인의 데레사 성녀는 복음과 원회규의 정신에 충실한 모습으로 개혁하고자,
1562년 아빌라의 성 요셉 가르멜 수녀원을 창립했고,
이후 십자가의 성 요한과 더불어 남녀 가르멜 수도회를 개혁하여
오늘날의 ’맨발 가르멜 수도회’ (개혁 가르멜)을 일으켰다.
현재 전세계적으로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개혁을 따르는
’맨발 가르멜 수도회’와
개혁 이전의 규칙을 따르는 ’완화 가르멜 수도회’가 함께 있으며,
우리나라에 진출해 있는 남녀 가르멜 수도회는 모두 ’맨발 가르멜수도회’(개혁 가르멜)에 속한다.
(가르멜수도회홈에서)
*성조 엘리야 예언자 축일:7월20일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축일:10월15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축일:12월14일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축일: 7월16일
축일:4월18일
알칸타릴라의 복자 안드레아 이베르논, Alcantarines
Beato Andrea Hibernon Francescano
Murcia, Spagna, 1534 – Gandia, Spagna, 18 aprile 1602
motivo per cui il pontefice Pio VI lo beatificò il 13 maggio 1791.
에스파냐의 귀족 가문의 일원인 안드레아 이베르논(Andreas Hibernon)은 무르시아(Murcia) 교외 알칸타릴라(Alcantarilla)에서 태어났는데,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삼촌 집에 얹혀살았다고 한다. 그는 열심히 일하여 누나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오던 중 강도를 만나 모든 돈을 빼앗겼다. 허탈감에 빠진 그는 세상 재물의 헛됨을 뼈저리게 느끼고 천상에 보화를 쌓아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 길로 그는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의 평수사로 입회하였다. 그는 겸손과 기도 그리고 관상에 뛰어났으며 숨은 생활을 즐겼다. 그는 무엇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지를 늘 지켜보고 행한 것으로 유명하며 그 결과 예언과 기적의 은혜까지 받았다. 성 안드레아는 자신이 세상을 떠날 날을 예고하였으며, 간디아(Gandia)에서 수도원 개혁을 돕던 중 68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성 파스칼 바일론(Paschalis Bailon, 5월 17일)과 성 요한 데 리베라(Joannes de Ribera, 1월 6일)는 성 안드레아의 이름을 널리 전하는데 크게 앞장섰다. 그는 1791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가톨릭홈에서)
*성 파스칼 바이런(1회,모든 성체신심 행사의 주보성인)축일:5월17일
*성 요한 데 리베라 주교 축일:1월6일
Fu in quel convento che egli venne a conoscenza della riforma molto austera introdotta in Spagna nel 1555 da San Pietro d’Alcantara. Fra’Andrea nel febbraio del 1563 passò allora al convento di Elche, dei Francescani Scalzi (detti Alcantarini),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는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불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 안에서도 널리 알려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에 의해 1209년에 시작 되었다.
'두 번째 그리스도'라 불릴 만큼 십자가의 신비와 그 의미를 삶으로써 드러낸 겸손과 가난의 성인의 영성이 워낙에 거대했기에 삶으로서 그의 영성을 그대로 살기에는 너무나 벅찼으며, 그래서 후에 독특한 세 개의 수도회로 분리되게 된다.
그러나 이 세 수도회의 근본영성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난 정신과 그리스도 모방의 근본 영성은 동일하다. 그 중에 하나인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Ordo Fratrum Minorum Conventualium-OFMConv.)는 1958년 한국에 진출했으며, 현재 서울, 부산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영성지도 및 사회복지 그리고 선교활동을 펴고 있다. 꼰벤뚜알이라는 말은 공동, 집합이라는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를 뜻한다.
이 말은 수도회 초기부터 프란치스코 성인이 세운 '작은 형제회(OFM)'를 가리키는 말로 써 왔다.
역사
1571년 이전의 역사
프란치스코 성인이 살아 있을 당시 수도회는 이태리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지역과 아프리카의 이슬람 지역, 동방에까지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1226년 성인이 돌아가신 후 수도회는 큰 수도회로 변화하는 가운데에 커다란 회를 이끌어 나가는데 있어서 행정조직의 문제와 회칙 해석의 어려움이 생겼다.
공동체의 원활한 운영과 효율적인 사목활동을 위해 공동재산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하는 형제들과 일체의 모든 것을 포기하기를 원하는 형제들 사이의 문제가 제기 되었다.
1257년에 열린 총회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을 잘 이해했고 또한 높은 성덕과 학식을 지닌 성 보나벤뚜라가 수도회의 총장이 되었다.
그는 수도회 초기의 어려운 문제들을 정리하면서 수도회의 체계를 잡아나가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상과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조화시키어 나갔다.
14세기와 15세기 온 교회에 널리 퍼진 혼란과 규율의 약화는 또한 수도회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프란치스코 수도회도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더욱 엄격한 생활을 원하던 수도회의 개혁그룹은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를 중심으로 더욱 커지면서 옵세르반트 수도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와 달리 그 나머지 형제들을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자들이라 불렸다.
여러 교황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두 그룹 간에 불화가 깊어지자 1517년에 교황 레오 10세는 이 둘을 법적으로 분리하였다.
여기서 개혁 수도자들은 옵세르반트 작은 형제회(OFMObs.:옵세르반트란 엄격한이란 뜻. 여기서 훗날 까프친 프란치스코회가 개혁을 주장하면서 다시 분리되어 나오게 된다.)라 하고, 완화된 수도생활을 따르는 수도자들을 꼰벤뚜알 작은 형제회(OFMConv.: 꼰벤뚜알이란 "공동체"라는 뜻으로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성인이 살아있을 때부터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부르던 이름 중의 하나였다.)라 불렀다.
1517년 이후의 역사
1517년 분리 당시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자들은 대략 25000명에 이르렀으나 16세기의 종교 개혁을 겪으면서 영국과 아일랜드, 독일과 그 인접 국가에서 많은 수도원과 수도자들을 잃기도 하였지만 17세기와 18세기의 부흥과 쇄신의 시기를 맞으면서 동유럽 지역 및 러시아, 리투아니아, 몰다비아, 왈라키아에 선교를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꼰벤뚜알 스판치스코 수도회에 거룩한 성인들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쿠베르티노의 성 요셉(+1633), 순종의 모범인 포텐자의 복자 보나벤뚜라(+1711), 아폴리아의 열렬한 사도 성 프란치스코 파사니(+1742), 트렌트 개혁 뒤의 가장 뛰어난 교황 가운데 한 분이었던 교황 식스토 5세(+1590)와 최악의 종교탄압 시대에 교회의 운명을 짊어졌던 교황 클레멘스 14세(+1774)등이 있다. 한편 1771년 프랑스에서는 옵세르반트와 다시 결합함으로써 수도회의 회원들과 수도원이 늘게 되었다.
그러나 수도회의 번영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쇠퇴하게 되었다. 다른 수도회들과 마찬가지로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도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대, 그리고 19세기의 종교억압의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손실을 입게 된다. 1773년 당시 약 25000명의 회원이 100년 뒤인 1893년 1,481명으로 줄었다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활발한 선교활동과 사회 안에서의 적극적인 삶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전 세계 36개 관구에 약 4500명의 수도자들이 있다.
영성
교회와 세상 안에서 효과적인 현존'이란 것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로서 우리의 정체성이 명확하고 적극적이며 확고히 규정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며,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사회의 도전과 교회의 요구에 적절히 응답해 주는 노력이 있음을 뜻한다.
"우리 시대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만일 용기와 즉각성 그리고 신속함과 항구함으로
우리 사부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을 발전시키기만 한다면,
우리 세라핌 수도회보다 더 적절한 것은 없을 것이다."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SK486).
따라서 우리는 세라핌 사부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다시 찾아, 그것을 이 사회와 문화 안에서 사람들에게 새롭게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현 시대가 필요로 하며,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강조하셨던 영성이란 바로 형제애, 작음, 공동체 정신으로 나타난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홈에서)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 축일:10월4일
*성프란치스코의 거룩한 상흔 축일:9월17일
'성인, 성녀 축일 기념일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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