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코니의 성 이냐시오 수도자,OFM Cap.
성 이냐시오는 1701년 12월 10일 사르디니엔 지방 라코니의 신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착하게 보내다가, 1721년 카푸친 형제회에 평형제로 입회했다.
카글리아리에서 40년 가까이 애긍을 모으는 형제로 살았다. 이 때 세상에 겸손과 성덕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가 이룬 많은 기적들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그를 기적을 이루는 이로 찬양하였다. 17881년 카글리아리에서 선종하였다. (작은형제회홈에서) 그는 주로 이 집 저 집을 다니며 애긍한 것으로 동료 수도자들을 도왔는데 그 일을 거의 40년 동안이나 하였다. 그는 병들거나 외로운 이들을 위로하고 거리의 아이들을 격려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 이냐시오 수사로부터 오히려 선물을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적대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고 죄인들을 회개시키며 문제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그는 일부로 한 악덕 대금업자의 집을 들르지 않고 건너뛰었는데, 이를 알고 그 대금업자가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장상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장상은 성 이냐시오를 그 집으로 보냈고 그는 배낭에 음식을 가득 넣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 배낭이 텅 비워졌을 때 그곳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러자 성 이냐시오는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피입니다”라고 한 후 조용히 설명하기를 “이것이 제가 그 집에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이유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심을 지닌 그는 부드럽고 천진난만한 성품으로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의 잔꽃송이에 버금가는 행적을 쌓았다. 그는 1951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이냐시오 빈첸시오 페이스는 사르디니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20세 되던 해에 카프친회에 들어갔다.
주로 문전걸식을 하여 얻은 애긍으로 동료 수도자를 도왔는데, 그는 이 일을 거의 40년 동안이나 하였다.
그의 특징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심을 지녔고, 그의 부드럽고 천진난만한 성품은 성 프란치스꼬의 잔꽃송이에 버금가는 행적을 낳았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잔꽃송이 (1975, 분도출판사)
이 책은 성 프란치스꼬와 그의 동료들에 관한 일화와 여러 이야기들을 엮은 것으로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제1부는 총 53장으로 되어 있으며, 성 프란치스꼬와 그의 몇몇 동료에 관해 수집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제2부는 "성 프란치스꼬의 오상에 관한 몇 가지 고찰"이라는 다른 제목을 갖고 있다. 이 부분은 단지 5장으로 되어 있으나, 성 프란치스꼬의 생애에 가장 빼어난 사실 중의 하나인 오상에 관해 아주 상세히 말해주고 있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수도회홈에서)
’잔 꽃송이’는 성 프란치스코에 관한 전기 가운데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성인은 단순하고 순박한 분이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인간의 단순함과 소박함에 더 많은 가치를 두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느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보기를 좋아했다.
성프란치스코는 복음 성서의 한 구절에서 "어린아이 같은 자라야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마르10.5)라는 구절을 특히 좋아했다. (작은형제회홈에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10월4일. *성프란치스코의 거룩한 상흔 축일:9월17일.
가난의 맛도 신앙심의 맛도 잘 알다 빈첸시오의 집안은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조용하고 열심히 일하는 농부였고 좋은 모범으로 자녀의 신앙생활에 본을 보여주었다. 매일 아침에 성당에 다녔고 가족과 함께 매일 저녁에 묵주기도 바치곤 하였다. 신앙심 깊은 그의 어머니는 빈첸시오에게 기도와 교리를 가르쳤다. 빈첸시오는 비록 몸은 약했지만 성당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했고 부모를 도와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기적으로 식량을 공급한 적 있었지만 무서운 놀이 친구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일꾼들에게 줄 음식이 모자랐을 때, 빈첸시오는 아버지께 음식이 충분할거라고 설득했고, 마침내 모두가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남은 음식을 포장하여 집으로 가지고 갈 수 있었다.
기대와는 다르게, 빈첸시오의 신체적 허약함을 본 관구 봉사자는 차갑게 그의 요청을 불허했다. 아주 엄격하고 금욕적고 힘든 카푸친 수도생활에 부적합 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와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을 돌봐주는 고향 라코니 지방의 후작에게 도움을 청하여 마침내 그의 도움으로 평형제로 수도회에 받아 들여져 1721년 11월 10일, 외딴 산 베네데토 아빠테(San Benedetto Abbate)의 카푸친 수련원에서 수련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거기서 ‘이냐시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카푸친 수련기 생활은 순풍에 돛 단 듯 언제나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엄격한 수련기는 순풍에 돛 단 듯 그렇게 언제나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한번은 물 한 항아리를 들고 위층으로 옮기는데 그 항아리가 너무 무거워서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때마침 계단 위쪽에 위치한 성모 성화를 향해 도와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때 성모님께서 당신 아드님이 얼마나 큰 수난을 당해야 하셨는지에 대해 상기시켜 주었다. 그 일을 계기로, 성모님의 든든한 동반과 예수님의 모범은 이냐시오 형제에게 어떤 어려움 중에서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거룩한 신부님(Padre Santo)'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그는 그 소리를 듣기 싫어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너무나 야비한 놈" 혹은 "아무 일에도 쓸모없는 카푸친들의 당나귀"라고 칭했으며, 늘 자신을 "야비하고 쓸모없는 죄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 그가 어쩌다 사람들한테 욕을 먹었을 때 "드디어 칼랴리에는 나를 너무도 잘 알고, 나를 있는 그대로 부를 줄 아는 사람이 하나 있구려!"하며 기쁘게 외치곤 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의 기적들에 대해 열광의 함성을 지르면 "쉿! 쉿! 이 일은 주님의 일이니까." 라고 타이르곤 했다.
동네에 고리대금업자(부당한 이자를 챙기는 현대의 악덕 사채업자)가 있었는데 이냐시오 형제는 그 집을 그냥 지나쳐 가곤 했다. 그 사채업자는 이것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느껴서 고리대금업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이냐시오 형제의 봉사자에게 이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래서 봉사자는 이냐시오에게 그 집에서도 구걸을 하라고 명했다. 이냐시오 형제가 그 집에서 구걸한 뒤 귀가해서 구걸 자루를 비우자 그곳에서 핏 방울이 떨어졌다. 이냐시오는 이것을 보고 "이것은 가난한 이들의 피이며 그래서 나는 그 집에서 그 어떤 것도 청하지 않았어요."라고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채업자는 회개하여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했다. 또, 우유에 물을 타서 양을 불려 파는 우유장수가 있었는데, 그에게 구걸한 우유를 이냐시오 형제의 자루에 넣었더니 우유에 포함된 물의 양만 자루에서 빠져나와 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은 아무것도 구걸하지 못하여 동료 형제와 함께 빈 자루를 매고 귀가했다. 오는 도중에 길에서 돌을 주어 자루에 채웠는데, 어깨에 매고 오는 중에 자루에서 따뜻한 열기가 전해져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루를 열어보니 과연 돌 대신에 갓 구워진 빵이 굴러 나왔다. 한번은 올리브 기름장수에게서 기름을 구걸한 적이 있는데, 기름장수가 장난으로 기름을 담을 병이 없다며 그의 구걸 자루에 기름을 가득 채워 주었다. 그 자루는 기름같은 액체를 담으면 다 새어버리는 자루였다. 하지만 이냐시오 형제는 한 방울의 기름도 새지 않은 채 그 자루를 형제회로 가지고 갔고, 이것을 본 기름장수는 너무 감탄하여 그 기름통 전체를 형제들에게 기증했다. 또 한 번은 양치기에게 치즈를 구걸 했는데 거부 당했다. 이냐시오 형제는 '인내심!'이라고 중얼거린 뒤 어깨를 으쓱이며 제 갈 길을 갔다. 그러자 기증을 거절당한 그 둥근 치즈가 스스로 바퀴처럼 굴러 이냐시오 형제의 뒤를 따라갔다. 이것을 본 양치기는 그 치즈와 함께 더 많은 치즈를 기증했다. 어느 날, 이냐시오 형제가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었을 때였다. 마침 한 일꾼이 성모상을 꾸미기 위해 사다리를 놓고 높이 올라갔다. 그 일꾼은 미끄러져 그만 사다리에서 떨어졌는데 이것을 본 이냐시오 형제가 큰 소리로 "멈춰!"라고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일꾼은 공중에 그대로 멈추게 되었고, 이냐시오 형제가 사다리를 그의 발 밑에 옮겨 그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때까지 그대로 정지된 상태였다. 임산부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였던 이냐시오 형제는 임산부들이 아기를 무사히 낳고 건강하게 기를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했는데, 임산부들이 먹고 싶어 하는 과일을 제 계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소매에서 신선한 과일을 꺼내어 주곤 했다.
십자가의 예수님과 매우 가까이 지냈던 그는 예수님과 함께 1781년 5월 11일, 금요일 오후 3시, 칼랴리 부온카미노에 있는 성 안토니오 형제회의 양호실에서 임종하였고, 천사들의 마리아 경당 옆에 따로 마련된 지하성당에 묻혔다. 그의 비석에는 '거룩한 갈채와 함께'라는 비문이 씌어있다. 거룩한 카푸친의 동냥자 시신 2구가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200년 후, 이냐시오 성인과 같은 일을 해왔던 제스투리(Gesturi)의 복자 나콜라오(1882 -1958)의 시신도 성 이냐시오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그 곳 같은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작은 형제들의 회칙과 생활은 순종 안에, 소유 없이, 정결 안에 살면서
“우리의 생활의 모든 상황에서
성 프란치스코가 세웠던 작은 형제회의 최후의 개혁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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