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3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2021.06.0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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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삶의 최우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들려 주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0)
모든 계명 중 첫째 가는 계명에 대해 묻는 율법 학자에게 예수님께서 답하십니다. 첫째는 바로 하느님 사랑입니다!
물질주의적 세계관이 만연한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하느님을 삶의 최우선으로 삼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정 제도나 신분에 속하지 않은 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자칫 이상주의자나 현실 부적응자, 광신자로 치부될 위험까지도 있지요.
세상은 자기들이 자행하는 불의와 부정에 대해 양심을 압박하는 하느님과 그분 자녀들이, 세상 한구석에서 그저 조용히 자기들끼리 특정 양식을 공유하며 신앙생활을 문화 양식의 일환 정도로 꾸려나가길 원합니다. 세상이 하느님 대신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재물과 명예, 권력이 그리스도인에게는 한갓 우상일 뿐이니 불편하기 그지없겠지요.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
하느님 사랑에 이어 그분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바는 이웃 사랑입니다. 자신에게만 매몰되지 않고 타자에게 열려 있는 연민과 헌신의 마음이지요.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는 자연스럽게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이고 또 하느님을 중심으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으니, 이미 자신과 타인이 별개가 아닌 까닭입니다. 오히려 사랑하지 않는 것이 더 힘이 들게 됩니다.
반면 세상이 첫째로 추구하는 우상에 매이게 되면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재물 앞에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들이 최대로 추구하는 이윤은 자본주의 자유시장 경제체제 안에서 누군가를 도구화하고 착취한 결과물일 때가 많습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산업재해들이 그 단적인 증거지요.
권력이 최우선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를 딛고 올라서야 하는 힘의 원리에 편승하게 되면 사람은 자꾸 뒤로 밀리게 마련입니다. 또 평소 별볼일 없(어 무시해도 된다고 여기)는 가난한 이들의 지지를 실탄 삼아 누리는 영광은 사람을 그저 이용할 뿐이지요. 우상이 첫째인 사람에게 이웃 사랑은 더 많은 걸 얻기 위한 보여주기 이벤트일 뿐이지요.
제1독서 대목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놀라운 기적을 낳은 장면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내 친족 누이 사라를 나에게 주라고 라구엘에게 말씀드리시오."(토빗 6,9)
토비야는 일곱 명의 신랑이 혼인 신방에서 죽어 나간 사라의 일을 모르는 바가 아니어서 그녀와 혼인하기 두려웠지만, 라파엘의 권고의 말을 듣고 "그 여자를 매우 사랑하게 되고 그 여자에게 마음이 끌리게"(토빗 6,18) 됩니다.
"여보, 일어나구료. 우리 주님께 기도하며 우리에게 자비와 구원을 베풀어 주십사고 간청합시다."(토빗 8,4)
사라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결심한 토비야는 장인이 될 라구엘의 만류에도 혼인을 결행하고 사라와 함께 이처럼 기도로써 부부의 삶을 시작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특별한 인연으로 서로 엮이는 순간, 인간적인 관심이나 욕정을 뒤로 하고, 모든 생명과 관계를 주관하시는 하느님 앞에 먼저 무릎을 끓는 모습은 의미심장합니다.
"이제 저는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저의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토빗 8,7)
토비야의 기도는 자신이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의 뜻을 우선하여 선택하고 실행했음을 그분께 엄숙히 고백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에게 첫째는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과 사랑이었고, 그 사랑이 사라를 향한 연민과 헌신의 사랑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이 사랑은 서로에 대한 구원으로 결실을 맺게 됩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는, 하느님의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합니다. 이웃과의 사랑이 깊어지면 하느님을 향한 사랑도 더욱 친밀해지지요. 그러면 무엇이 먼저랄 것 없이 사랑이 사랑을 더 두텁고 진실되게 합니다. 이제는 억지로 힘 들이지 않아도 사랑이 알아서 사랑을 낳고 키우는 경지가 될 것이고, 그 사랑이 우리를 감싸고 데려갈 겁니다.
사랑하는 벗님!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길에 동반자인 우리 모두를 축복합니다. 지치지 말고, 그치지 말고 사랑의 길을 걸어 사랑을 완성해 나가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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