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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12주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년 6월 20일 연중 제12주일

 

2021.06.20.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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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를 새로운 건너감으로 초대하십니다.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마르 4,35)
예수님이 호숫가에서 군중에게 비유로 많은 가르침을 주신 뒤 제자들에게 제안하십니다. "건너감"은 성경에서 의미심장한 단어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물을 건너는 매우 상징적인 체험으로 초대된 것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 4,38)
거센 돌풍으로 배에 물이 들어차는 돌발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태평스럽게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시니 다급해진 제자들이 스승을 깨우며 외치지요. 물일을 했던 제자들은 물이 생명이면서 동시에, 동전의 양면처럼 죽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본능과 체험으로 알 터이니 얼마나 겁이 났겠습니까!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올 때도 그랬습니다. 갈대 바다와 마주치자, 앞으로는 검푸른 바닷물이,  뒤로는 이집트 군대가 추격을 해오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몹시 두려워하며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탈출 14,10)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마르 4,39)
이집트 탈출 때 모세가 주님의 분부대로 지팡이를 뻗자 바다에 길이 납니다. 새로운 모세이신 예수님은 말씀으로 바람을 꾸짖고 호수에 침묵을 명하시지요. 그분 말씀에 곧바로 순종한 바람과 물결을 보며 제자들은 얼이 빠집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처럼 이 세상 만물의 주인이시고 주권자이심을 본 것이지요.


이것이 제1독서에서 주님이 욥에게 물으신 질문의 답입니다.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욥 38,8)
고통과 억울함에 차서 주님과 시비를 가리려는 욥에게 주님께서 물으시지요. 온 세상 만물과 자연 질서를 주관하시는 분께서 마치 모든 걸 아는 듯 결백을 주장하며 따지는 욥을 새로이 깨우쳐 주시려는 겁니다.


"여기까지 와도 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너의 도도한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욥 38,11)
주님께서 자연에 이렇게 명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갈대 바다를 건널 때의 주님의 생각이고, 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든 풍랑에게 던지신 일갈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들어가면 하느님 자리에라도 있는 듯 불행과 고통에 분개하는 피조물 욥에게 선을 그어주시는 말씀이기도 하지요.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40)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외부적 파도와 돌풍 못지않게 요동치는 제자들의 내면을 두드리십니다. 죽을 것 같았던 두려움과 공포가 지나간 뒤 예수님께서 "믿음"을 확인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는 건너감입니다. 물을 건너면서 죄로 물든 옛 사람이 죽고, 믿음으로 거듭 난 새 사람으로 탄생하는 것이 세례지요. 이스라엘이 갈대 바다를 건너며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듯, 풍랑으로 죽을 위기를 넘긴 제자들에게도 "믿음"이 요구됩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죽음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이야기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2코린 5,17)
이스라엘이 새로운 하느님 백성으로 거듭나고, 제자들이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정립해야 하듯,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우리 역시 새로운 피조물로써 그분과 새로운 관계 안으로 들어갑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삶이 그다지 녹록치 않지요? 좋고 행복하고 기쁠 때도 분명히 있지만 내맘 같지 않은 혼돈과 불안, 어둠과 고통이 곳곳에서 요동을 치는 게 인생이니까요.

막막한 인생의 바다를 두려움과 불안에 싸여 건너는 우리가 그 파도와 물살에 휩쓸리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이미 이 물에서 죽음을 건너 생명을 얻은 존재라고 굳게 믿는 것, 둘째, 매일 그 믿음을 갱신시켜 주시는 말씀을 꼭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다시 힘을 얻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이미 죽음을 건너 새로운 피조물이 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