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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년 6월 21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2021.06.21.mp3

2.76MB


오늘 미사의 말씀은 순명의 유연성을 가르치십니다.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마태 7,5)
예수님께서 자기 잣대로 남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이에게 먼저 자신을 살피라고 이르십니다. 들보는 집의 지붕틀을 받치기 위하여 기둥이나 벽체 위에 수평으로 걸친 구조물로서 굵고 단단한 재료를 사용하지요.


눈에 이런 들보가 걸쳐져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다른 게 제대로 보일 리 없겠지요. 자기 생각과 가치관, 의견을 떠받치는 거대한 들보는 시야를 가릴 뿐만 아니라 그 무엇도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게 만듭니다. 스스로 의식하기 전까지는 답답한 줄도 모르지요.

예수님은 자기 식대로의 심판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하시려고 내 눈의 "들보"와 형제 눈의 "티"를 대조적으로 비유하십니다. "들보"와 "티"는 비교 대상조차 되기 어려운 크기니까요.

사람은 자기 존재 안에 걸쳐지는 들보를 과감히 치우는 부단하고 반복적인 작업이 필요합니다. 살면서 우리 내면에 철학과 가치관이 형성되기 마련인데, 그것이 자신을 지탱하는 단단한 버팀목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상황도 변하는데 한 번 설치한 들보에만 계속 집착하고 의존한다면 우리 시각과 사고와 관계는 경직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심판은 어불성설이지요. 물론 그 자신은 의식 못하겠지만요. 그 작업이 바로 기도일 겁니다.

"빼내어라."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 박힌 들보를 빼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당장 그걸 빼내면 집(자신)이 무너질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자기 생각과 행동양식까지 지배하던 들보를 어떻게 빼낼 수 있을까요?

오늘 제1독서에서는 아브람이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길을 떠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
"주님께서 이르시는 대로 길을 떠났다."(창세 12,4)
그렇게 주님의 말씀에 순명해 고향을 등진 해는 그의 나이  일흔 다섯 살 때입니다. 삶에서 많은 것이 안정되고 견고해졌을 시기일 겁니다.


"그는 그곳을 떠나"(창세 12,8)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을 자세히 읽다 보면 그의 떠남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르심이 일회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상 순례 여정 중에 있는 우리는 천상 본향으로의 회귀라는 결정적 부르심이 주어지기 전까지 끊임없이 듣고, 응답하고, 떠나야 합니다. 


이러한 주님과 아브람의 관계 맺음은 기도의 역동성을 보여 줍니다. 먼저 기도는 들음이지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경청하여 듣는 것입니다. 귀만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듣고 그대로 행함으로써 온 존재로 실현하지요. 들은 이는 부르심에 순명해 자신을 던집니다. 주님의 말씀만 믿고 떠나 길 위에 들어섭니다.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창세 12,7.8)
듣고 떠난 이는 결국 어딘가에 다다릅니다. 그리고 그곳까지 자신을 부르신 주님을 위해 재단을 쌓고 그분을 경배하지요. 제단은 자신이 흘러온  모든 여정이 주님의 부르심이었음을 확인해 주고 그분과의 관계성을 증명합니다. 스스로도 이 부르심의 여정에서 벗어나지 않겠지만, 자기를 이곳까지 부르신 주님도 이 여정에서 떠나시지 않으셔야 한다는 확증입니다.


"아브람은 다시 길을 떠나"(창세 12,9)
그러고도 아브람은 또 떠납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여정에 멈춤이란 없습니다. 영적 여정에서 고착과 정지는 퇴보를 의미하지요. 기도하는 이, 듣고 순명하는 이는 주님의 뜻에 이처럼 유연히 반응합니다. 한 번 들었다고 귀를 꽉 막고 버티어서는 안 되지요. 꼭 물리적인 이동만이 아닌 이 떠남은 천상 본향에 이르기까지 계속될 주님과의 그침없는 동행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주님께서 한때 나를 지탱하고 도움이 되었던 들보를 빼내고 새로이 떠나라고 부르십니다. 한때 그 들보가 자신의 삶을 흔들리지 않게 북돋워주고 향상시켜 주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들보만 믿고 어느 결엔가부터 깊은 사랑과 연민의 숙고 없이 형제와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면 이제는 그 들보와 이별해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이 들보에 의지해 끊임없이 형제를 잣대질하고 심판한다면 언젠가는 자신이 그 심판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테니까요.

누군가의 티가 거슬린다면 내 눈에 들보가 있음이 거의 확실합니다. 그럴 땐 용기를 내어 자기 들보를 훌훌 내려놓고 홀가분히 떠날 수 있으면 좋겠지요. 주님을 따라 떠나고 또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아브람처럼 들보에 안주하고 싶을 때마다 내려놓고 또 내려놓으며, 사랑의 부르심과 유연한 순명의 역동적 여정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이 길 위에 들어선 여러분을 축복하며 성 알로이시오의 전구를 청합니다.

성 알로이시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