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오상선 신부님 ~

2021년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2021.06.25.mp3

2.70MB


6.25 전쟁이 일어난 지 71년째인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용서와 회복을 이야기하십니다.

제1독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축복을 회복하는 길을 제시하는 대목입니다.

"마음 속으로 뉘우치고, ... 하느님께 돌아와서, ...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신명 30,1-3)
하느님은 당신을 떠난 백성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든, 언제라도 당신께 되돌아오길 목놓아 기다리는 아버지십니다. 그분은 언제라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분, 죄의 짐을 가득 안고 당신께 다가오는 백성을 향해 방향을 돌리시는 하느님이시지요.


그분께서 바라시는 것은 잘잘못을 따지고 징벌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 백성이 자신의 자리, 곧 아버지 품을 되찾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일에는 명민하고 관대하시면서, 심판에는 더디시고, 용서에는 절도 없이 헤프신 분이 우리의 아버지시지요.

제2독서는 용서와 사랑에 대해, 그런 아버지와의 관계성에서 출발하여 이야기합니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에페 4,32-5,1)
용서 이전에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용서도 가능하지요. 아직 사랑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억지로 용서를 강요한다면, 그렇게 강요된 용서는 아직 용서가 아닙니다.


용서에 앞서 우리가 사랑이신 아버지의 자녀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녀라면 아버지를 닮기 마련이니, 아버지의 사랑의 DNA, 용서의 DNA가 자연스레 발현되고 흘러나오겠지요. 사랑하는 이에게 용서는 더 이상 손해나 패배, 바보짓이 아니라 사랑에서 분출된 용기입니다. 사랑이 클수록 용서도 크고, 사랑이 온전할수록 용서도 온전합니다.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에페 5,2)
사도 바오로의 사랑하라는 권고 안에는 용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사랑의 모범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이의 죄를 용서받게 하시려고 당신을 제물로 내놓으셨으니까요.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이는 사랑함으로써 용서하고, 용서함으로써 사랑합니다.


복음은 기도와 용서의 가르침입니다.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
마음을 모아 청한다는 것은 같은 지향, 같은 뜻을 공유하여 한 분이신 아버지를 함께 향하는 것입니다. 둘이건 셋이건 공동체건 하나로 마음을 모으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우리는 체험상 모르지 않지요. 마음을 모으기까지 얼마나 많은 포기와 양보, 용서와 사랑, 눈물과 한숨이 스미는지요. 그래서 마음을 모아 드리는 기도가 주님께 값지고 소중한 겁니다. 그분이 안 들어주실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을 행사하는 기도지요.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용서에 대해 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답하십니다. 베드로 입장에서 최대치라 여긴 "일곱"이란 수를 반복해 "일흔일곱"이라 제시하시는 이유는, '무한히, 지치지 않고, 계속, 상대가 용서받았음을 깨달을 때까지, 그래서 상대가 그 용서로 변화될 때까지'의 의미를 각인시키시려는 의도 같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당신을 죽이는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이 떠오릅니다. 크건 작건 모든 용서에는 죽음이 수반되지요. 자기애의 죽음, 미움의 죽음, 심판 본능과 징벌 욕구의 죽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따르는 예수님은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죽기까지 용서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랑과 용서는 당연히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휴전의 기간이 늘어지고 세대가 바뀌어가면서 전쟁의 아픔은 무관심으로 변하고 통일에 대한 열망조차 희박해져 가는 요즘입니다.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정치논리에 이용하는 것은 우리 관심사가 아니니 차치하고, 우리는 그저 '당신이 하셨듯 사랑하라'는 주님의 지상 명령에 마음을 쓰면 좋을 듯합니다.

사랑에서 시작하면 용서도 가능하고, 그렇게 다시 한 걸음씩 오가고 문도 조금씩 열다 보면 그들과 우리가 함께 마음을 모아 아버지께 청하는 일도 가능해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우리 모두를 지배하게 되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버지께서 더 간절히 이 기도를 기다리고 계시니, 이 간절한 청원을 못들은 체 하실 수 없으시지요. 화해와 일치를 향한 더 깊은 염원과, 호국연령들을 위한 진심어린 기도로 오늘 하루를 봉헌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