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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학자 기념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년 9월 3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2021.09.0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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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은 계약을 어떻게 완성하시는지 들려 주십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루카 5,33)
이번에는 단식 논쟁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끊임없이 자기들의 관습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비교해서 허점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제도적 전통적 실천 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실제로 예수님 일행이 먹고 마시기만 했을 리는 없겠지요. 이런 과장과 왜곡 안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 심저에 피어나는 분노와 조바심이 읽힙니다. 그들은 지켜 오던 것이 그저 안전하게 계속 지켜지고 또 잘 수호되어 전해지기를 바라며 그 역할에 자처하고 있습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루카 5,34)
예수님은 지금 당신께서 피조물 한가운데서 함께 하시는 이 순간을 혼인 잔치에 비유하십니다. 언젠가 세상 구원의 날이 오면, 모든 인류가 하느님 나라에서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영원하고 완전한 일치를 이루게 될 그 기쁨을 인류는 지금 앞당겨 맛보고 있는 것이지요. 다만 아직 아무도 그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루카 5,38-39)
예수님은 헌 옷과 새 옷,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의 비유로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실 결정적 구원 계획을 계시하시지만, 이 역시 모두가 다 알아듣는 건 아닌 듯합니다.


이 말씀에 묻어나는 예수님 목소리 톤에 가만히 머물러 봅니다. 분노나 질책, 실망의 세기가 아니라 어떤 미세한 아쉬움의 진동이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묵은 포도주(옛 계약)에 깊이깊이 심취한 이들이 새 포도주(새 계약)에 맛을 들이기가 참 어렵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계십니다. 

선택은 강제할 수 없습니다. 강요한다면 선택이 아니니까요. 또 새로움을 거부하는 이들에게서 옛 것을 빼앗아서도 안 됩니다. 구원은 하느님의 사랑의 의지와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이 함께 이루어내는 합작품이니까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볼멘 소리를 들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을 겁니다.

제1독서에서는 참으로 아름다운 그리스도 찬가가 울려퍼집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콜로 1,16)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콜로 1,16)
모든 피조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기에 본성적으로 그분을 향합니다. 비록 옛 포도주의 향기와 맛이 더 익숙하더라도, 예수님이 옛 계약의 주체이신 하느님과 같으신 분,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이고 또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구원의 순리에 마음을 열면 자연스레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지요.


"그분은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20)
예수님께서 계약을 완성하신 방법은 "화해"입니다. 그것도 "기꺼이" 그렇게 하셨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의 희생 제사로 하늘과 땅, 유다인과 이방인, 구약과 신약, 율법과 성령이 하나를 이루어 완전한 구원으로 나아갑니다.


어쩌면 신랑과 함께 있는 혼인 잔치의 때는 옛 것과 새 것을 구분하고 따지고 공격하고 등질 때가 아니라, 열렬히 다가가고 뜨겁게 일치하고 새로운 통합을 잉태하여 낳는 화해의 때인 것이지요. "(그런데도) 묵은 것이 좋다."는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안타까움이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인지도 모릅니다.

내면에 낡고 굳어버린 부분이 게으름이나 두려움 때문에 행여 멈추어 있다면, 성령의 열기로 녹여 새로운 포도주로 빚어 내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사실 구원의 역사 안에서 그 어느 것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까요.

흘러간 것이든, 현재 마주한 것이든, 앞으로 다가올 것이든 우리는 그 무엇을 통해서도 그리스도를 향하게 되어 있답니다. 예수님 안에서 이 모두가 화해를 이루는 날, 우리는 정말로 진하게 그분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