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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22주간 목요일 / 오상선 신부님 ~

2021년 9월 2일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2021.09.02.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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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구원 받기 전 우리가 어떤 처지였는지 일깨워 주십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마태 5,4)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당신께 몰려든 군중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중에 베드로의 배 위에 올라 계속 가르치십니다. 이윽고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은 밤새도록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고 허탕 친 어부들에게 이렇게 조언을 하시지요.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고기잡이 전문가들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지요.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가 잡힌 겁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자아와 고집, 지식과 경험을 내려놓았기에 예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합니다. 그는 엄청 놀란 데다 두려움까지 느낍니다. 그저 평범한 어부에 불과한 자신과, 기적을 일으키시고 하느님 말씀을 가르치시는 존재가 나란히 설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듯합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자각은 하나의 선물입니다. 이는 지나친 죄책감이나 죄의식으로 짓눌리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실존을 겸손하고 건강하게 가늠할 수 있는 은총이지요.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10)
예수님은 베드로의 "죄인"이라는 자기 고백을 만류하거나 부인하지 않으시고, 지워버리지도 않으신 채 그 위에 소명을 얹어 주십니다. 죄인이라는 진실이 부르심을 회피할 사유는 되지 못합니다.


베드로는 실패를 아는 사람입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밤새도록 빈 그물만 끌어올리다가 피곤에 절어 새벽을 맞아본 이는 허탈감과 절망만 배우지 않고 그에 더해 만물의 주인 앞에서 응당 지녀야 할 두려움까지도 소유하게 됩니다. 한 인간으로서 겪어낸 이 나약함과 부족함, 어두움의 깊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선택하신 건 아니었을까 묵상해 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콜로새 신자들에게 참으로 아름다운 축복과 기원을 나열하면서 우리가(그들이) 본시 어떤 존재였는지를 일깨웁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콜로 1,13-14)
원죄에 물든 우리는 본시 어둠에 속했었고 죄에 갇혀 있었습니다. 빛이신 분께서 오셔서 우리를 빛 한가운데로 불러내셨고, 죄인인 우리를 대신해 희생 제사를 올리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셨지요. 우리는 주님을 만남으로써 어둠에서 빛으로, 죄에서 구원으로 건너온 이들입니다.


영적 삶에서 빛과 어둠, 죄와 구원은 생략 불가, 월반 불가한 요소들입니다. 원죄에 물든 인간이기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지요. 그런데 악은 욕구를 충동질하고 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며, 그 수치심으로 사람을 무너뜨려, 결국 절망으로 주님을 떠나게 만들지요. 그저 송구하고 겸양한 말뿐이 아니라, 진짜로 주님께 "떠나 주십시오." 하게끔 조장하는 겁니다. 악은 하느님과 인간 관계를 분리하고 끊어내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 앞에 죄인이라는 겸손하고 건강한 인식은 우리를 그분과 더 가깝고 친밀하게 이어줍니다. 바로 그 이유로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셨고 사랑하시며 도구로 쓰시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으로 다정히 우리를 어루만지십니다. 우리가 끌어안고 있는 실패와 결핍의 빈 그물 앞에서 주님이 무어라 하시는지 귀담아 듣고 따르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의 미소함과 어둠, 죄와 실패가 우리를 주님께 이끌었으니 주저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그분께 나아갑시다. 겸손한 죄인인 여러분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