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9.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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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에 신앙의 초석을 놓은 순교 성인들을 기리며 경축하는 오늘, 미사의 말씀은 의인이 받을 몫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사람이 가장 직면하길 어려워하는 주제가 죽음이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항상 이 죽음이 끼어듭니다. 당신의 신원과 소명을 말씀하실 때에도 수난과 죽음이 늘 언급되고, 당신을 따르려면 십자가와 그 죽음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이르시지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죽음이란 존재는 어쩌면 참 당연합니다. 죽음이 없다면 지상의 유한한 생명에서 무한의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관문이나 경계가 부재하는 것이니까요. 유한한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로서는 하나의 생명을 포기해야만 더 나은 완전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죽음을 건너야만 부활이 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으니까요.
제1독서에서는 보통 사람은 깨닫지 못하는 의인들의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지혜 3,4)
물질과 현세적 안위를 행복의 척도로 보는 사람들 눈에 의인들은 꽤나 기구하고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의인들이 신앙과 신념 때문에 포기한 것들이 사실 세상에서 많은 편의를 보장해주니까요. 세상은 의인의 삶을 "죽음, 고난, 파멸"이라 여겨 조롱하거나 업신여깁니다. 육적인 세상의 가치와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행복은 화합하기 어렵습니다.
세속적 자기 영광과 주님께서 주시는 영광, 이 둘을 다 움켜쥘 수 없음은 명백하지요. 육적인 생명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기 위해 "죽음"이라는 관문을 거치듯이, 자기 영광이 죽어야 주님의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의인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과 희망으로 이를 감행한 사람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지의 영광 때문에 지금 누리는 자기 영광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당장은 보이지 않는 까닭이며, 익숙해진 풍요와 안락과 우월감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 죽음이 두려워 아직도 선택의 언저리에서 미적대고 서성이는 이들을 일깨웁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8,35)
죽음처럼 보이는 어떠한 것들도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아니, "환난, 역경,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험, 칼" 등등, 이 모든 것은 오히려 그분과 우리를 더 가까이 밀착시켜 주지요. 박해와 순교의 시대에 뜨겁게 타오르던 신앙과 열정이 안정이나 풍요와 더불어 오히려 무뎌지고 온도를 잃어 간 역사가 이를 반증합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영성체송)
주님은 세상에서도 실컷 누리다가 죽음 너머의 영원한 행복까지도 얻고 싶은 탐욕스런 속내를 모르시지 않으면서도, 영적 삶에 발을 들여놓은 이에게는 "증언"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놀라운 보상까지 마련해 놓으셨지요.
그분께 "제가 당신을 압니다." 한 이는, "나도 너를 안단다." 하는 사랑의 응답을 듣게 될 것입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예수님을 증언한 이는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는 성자의 증언을 들을 것입니다. 변호하고 보증하시는 영이 곧 성령이시니, 이 "앎"의 증언이야말로 삼위일체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의 유입이며 영원한 행복입니다.
그때 우리가 듣게 될 "내가 그대를 압니다."라는 주님의 증언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찬사에 비할 수 없는 영광이 될 겁니다. 이 증언이 바로 잠시 지나는 세상의 쾌락, 안위, 명예와 흔연히 맞바꾸어 얻게 될 몫입니다.
신앙의 초창기에 신앙적 돌봄과 양성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음에도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사랑 때문에 목숨을 바쳐 주님을 증거한 순교자들께, 나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십사 청합시다. 우리도 그들처럼 지금 여기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순교의 정신과 결단을 꽃피워 주님을 잘 안다고 증언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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