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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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어제 들었던 '약은 집사' 비유의 결론입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루카 16,9)
어제 우리가 보았듯이 주인이 맡긴 재물은 관리인이 주제넘게도 자신만을 위해 쓸 때는 낭비이고 불의합니다. 그런데 그 재물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될 때, 즉 주인의 뜻에 맞게 사용되면 관리를 맡은 이에게는 어떤 기회가 주어질 수 있게 됩니다.
그 불의한 재물로 인해 도움을 받은 이들이 그 관리인을 친구로 여겨 그를 위해 전구하고 빌어주게 되면 그가 비록 세상에서 자기만을 위해 살며 그다지 많은 공로를 쌓지 못했더라도 영원한 거처로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말입니다. 재물이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에 맞추어 사용됨으로써 사람을 살렸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루카 16,13)
물질주의, 황금 만능 시대, 소비 과시, 자유 시장 경제 체제에 젖어 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외면하고픈 불편한 진실일 겁니다. 재물이 주는 안정과 쾌락에 더해 종교적 보상까지 누리고 싶다면 번지수가 영 틀렸다는 뜻이니까요.
하느님은 재물을 허락하실 때 많이 받은 이나 적게 받은 이나 거리낌없이 돕고 나누며 살기를 기대하셨습니다. 누구는 이런 게 더 많고 누구는 저런 게 더 많아야 서로를 보완하는 상호적 사랑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지요. 이 목적에 맞게 사용되지 않은 재물, 즉 자신과 가족만의 안위와 사치를 위해 사용되는 불의한 재물은 하느님과 도무지 병립할 수 없습니다. 둘 다 손에 넣으려 한다면 하느님마저 재물 안에 끼워넣으려는 자가당착일 뿐이지요.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루카 16,15)
안타깝게도 요즘 세상은 사람에 대한 평가를 인격이나 심성, 선행이나 희생 등 그의 알맹이에 의거하기보다 재물을 기준으로 하는 듯 보입니다. 돈이 많으면 할 수 있는 일들, 외모와 몸매를 가꾸고 치장과 명품으로 과시하는 이를 관리 잘 한다 치켜 올리며 닮고 싶어하지요. 온통 껍데기에만 정신이 팔린 모습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럽다고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혐오스럽다"는 강한 표현까지 쓰신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모든 걸 누리면서 이기심과 탐욕을 벗을 줄 모르는 이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시려는 의도겠지요. 재물이 있다면 그 귀한 선물이 불의하게 썪어 악취를 풍기지 않도록 하느님 뜻에 맞게 선용해야 하니까요.
제1독서에서는 사도 바오로의 협력자들 이름이 등장합니다.
"프리스카와 아퀼라, 에패네토스, 마리아, 안드로니코스와 유니아, 암플리아투스, 우르바노와 스타키스, 테르티우스, 가이오스, 에라스토스, 콰르투스..."
바오로 사도는 맨 땅에 헤딩하듯 불모지인 이방 지역에서 복음을 선포했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을 것 같습니다. 누구는 재산으로, 누구는 재능으로, 누구는 시간으로, 누구는 노동력으로, 누구는 자기 권력으로 사도의 소명에 힘을 보탰겠지요.
굳이 이 발음도 어려운 이름들을 옮겨 적어 지면을 할애한 이유는 우리에게 신앙이 전해지기까지 자신의 재물을 사심없이 내놓았던 그분들의 이름을 불러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들의 나눔과 헌신을 통해 사도 바오로와 그들과 우리는 서로서로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일 영혼의 친구들로 엮이었습니다.
재물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유혹과 근심을 끌어옵니다. 많건 적건 재물에 초연할 때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이 더 수월해지지요. 재물만 잘 사용하면 부유해도 행복할 수 있고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집중하는 이에게는 가난도 부요도 축복이랍니다. 한 번 살다 가는 삶,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들을 잘 사용하고 잘 되돌려드릴 수 있는 벗님 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저도 사도 바오로처럼, 저의 협력자가 되어주신 말씀사랑 벗님들을 한분한분 떠올리며 감사와 축복의 기도를 봉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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