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4.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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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의 기쁨을 엿봅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루카 15,1)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세리와 죄인들이 몰려듭니다. 그들은 유다인들 사이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소외되는 부류에 속했지요. 특히 종교 기득권자들에게는 더욱 상종 못할 이들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이 예수님께 모여들고 있다니, 이를 바라보는 예수님과 하늘의 아버지 마음이 어떠셨을지 관상해 봅니다. 얼마나 기쁘고 신명이 나셨을지요! 잃어버렸던 이들, 율법의 문자에 의해 자의로 또 타의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새로이 움트는 희망을 향해 나아오고 있습니다!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루카 15,40)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루카 15,8)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죄인들과 스스럼없이 접촉하는 예수님을 보고 불평하자, 예수님께서 양 한 마리를 잃었다가 되찾은 사람, 은전 한 닢을 잃었다가 찾은 부인의 비유를 들어, 잃었던 이들을 다시 찾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보도록 이끄십니다.
찾을 때까지 뒤쫓는 이,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는 이가 바로 아버지시지요. 원죄의 결과와 과도한 율법의 무게 때문에 당신 곁을 떠났던 이들을 아버지께서 얼마나 그리워하시면서 절박하게 찾고 계시는지요! 그래서 아버지는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 겁니다. 예수님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타인의 죄가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에 주목하길 바라십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율법으로 남을 심판하는 이들를 상당히 강한 어조로 힐책합니다.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심판합니까?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로마 14,10)
아버지는 율법의 문자를 지키느냐 어기느냐 보다, 당신의 자녀들이 서로 존중하며 어우러져 사느냐에 관심을 두십니다. 설령 누군가 길에서 벗어나더라도 사랑으로 품어 다시 제 방향을 찾도록 돕길 바라시지요. 단죄와 심판으로 서로 무시하고 적대하는 건 아버지의 계획 안에는 끼어들 수 없는 모습입니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루카 15,10)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기쁨 안으로 들어오라고 초대하십니다. 내내 소외되었었지만 이제 희망을 찾은 세리와 죄인들은 물론, 이를 바라보는 종교 기득권자들에게도 기뻐하라고 손을 내미시는 겁니다.
사실 찾는 이와 발견되는 이가 만나는 이 복되고 흥겨운 환대와 용서의 자리에서 심판의 칼날을 쥐고 완고하게 버티는 심판자들이 오히려 불행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버지도, 죄인들도, 그리고 하늘의 천사들도 기뻐하는 이 자리에서 마음껏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려면 심판의 권한은 아버지께 맡기고 그저 사랑하면 족합니다. 세상 구원은 우리 심판에 달려 있지 않고 아버지의 사랑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쩌면 주님께서 애타게 찾으시는 귀한 존재일 수도 있고, 또 그런 누군가를 바라보는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또 어쩌면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우리에게 용서를 청하며 다가오는 누군가를 어떻게 대할까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 될 수도 있겠지요. 변화무쌍한 인생길에서 우리의 처지는 어느 하나로 고정되지 않습니다.
어느 상황이 되든, 단죄와 심판, 자포자기와 냉소가 아닌 용서와 화해, 환대와 사랑을 선택하시길 기원합니다. 마침 위령성월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으로 전대사의 은총이 곱배기로 마련된 시기지요. 아버지의 자비에 기대어 그 자비를 입고, 또 그 자비를 닮아가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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