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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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봉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마르 12,43)
예수님께서 성전 헌금함 맞은쪽에 앉아 사람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보십니다. 당시에는 헌금함에 돈이 떨어지는 소리로 헌금의 액수를 가늠할 수 있었다고 하지요.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에게 주목하십니다. 부유한 이들이 당당히 큰돈을 넣는 와중에 차례가 된 그녀가 보잘것없는 가치의 렙톤 두 닢을 조심히 넣었습니다. 초라한 과부 차림새의 행색으로 단박에 그녀의 처지를 알아차리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부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시선으로 봉헌을 바라보시는지 알려 주시려는 겁니다.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 12,44)
하느님의 셈법은 세상의 그것과 아예 다른 방식입니다. 세상은 산술적으로 큰 금액에 열광하지만, 하느님은 그 정도의 돈이 있거나 없거나 아무 영향도 받지 않는 부자들의 상태를 모르시지 않으니까요. 하느님은 액수나 수량이 아니라 마음을 보십니다.
숫자를 좋아하는 사람들 눈에 그 가난한 과부는 무모하리만치 어리석을 겁니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액수지만 그녀에게는 없으면 굶을지도 모르는 전 재산이니까요. 그런데 하느님의 눈에는 그녀가 매우 지혜롭습니다. 현재와 앞날을 동시에 주님 발 앞에 펼쳐놓았으니 하느님께서 움직이시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셈이니까요.
제1독서는 엘리야와 사렙타 마을 과부의 일화를 전합니다.
"먼저 당신을 위해 ... 그런 다음 당신과 당신 아들을 위해"(1열왕 17,13)
기근이 들어 모두가 굶는 때였지요. 이스라엘을 떠난 엘리야가 사렙타 마을에서 마주친 과부에게 물과 음식을 청하자, 여인은 마지막 양식을 먹고 죽으려는 참이라고 솔직히 답합니다.
그런 절박한 처지의 여인에게 엘리야의 요구는 좀 무리하게 들릴 수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한 줌의 밀가루와 약간의 기름은 모자가 먹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양이니까요.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1열왕 17,15)
하지만 여인은 그대로 순종합니다. 밀가루 단지와 기름병이 비지 않을 거라는 엘리야의 말을 믿어서일 수도 있고, 피차 서로 굶는 처지에 조금이라도 내놓아 생명을 나누려는 연민 때문일 수도 있지요. 엘리야의 말을 들음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여인은 앞으로 식량 걱정을 덜게 될 요긴한 선물을 받습니다. 소박하지만 생명을 나누었기에 생명을 보상으로 받은 것입니다.
제2독서는 예수님의 봉헌을 이야기합니다.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쳐 죄를 없애시려고"(히브 9,26)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여느 사제들과 달리 대사제이신 예수님은 당신의 피를 영원한 제물로 바치셔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생명을 온전히 아버지 손에 넘겨드리심으로써 완전한 봉헌을 이루신 것이지요.
이처럼 완전한 봉헌의 수혜자는 우리 인류입니다. 아버지는 이 남김없는 봉헌의 대가로 세상과 화해를 이루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르는 길을 다시 열어 주셨지요.
봉헌은 단 한 번으로 이루어지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닙니다. 서원이나 서품, 입단 등의 특정한 기회뿐만 아니라 매일 매순간 봉헌을 갱신하도록 우리는 초대를 받고 있지요. 나는 어떤 마음으로 생명을 내주며 봉헌의 기쁨을 살아가는지 살피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평신도 주일을 맞이하여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봉헌하는 벗님들과 마음을 보시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여러분의 진실된 제물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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