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1.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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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의 말씀은 지혜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제1독서의 대목은 지혜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러 차례 반복해 읽다 보면 지혜의 매력에 푹 빠져들어 헤어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영혼이 즐겁고 행복해집니다. 거룩, 청절, 자유, 평온, 섬세, 통찰, 광채... 지혜를 가리키려 골라낸 단어들이 얼마나 영롱하고 찬란한지, 가히 '지혜의 찬가'가 울려퍼지는 듯하지요.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지혜 7,26)
우리의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지혜이십니다. 구약에서 성경 저자들이 의인화한 지혜가 바로 육신을 취해 세상에 내려 오신 예수님이시지요. 지혜이신 예수님께서는 빛이신 아버지에게서 흘러나오는 광채이시고, 언제나 일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일하시며, 선하신 아버지의 완전한 모상이십니다.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지혜 7,27-28)
지혜를 사랑하고 갈망하며, 지혜를 만나 마음에 품은 이는 하느님의 벗이 되어 그분과 마음을 나누며, 그분의 목소리가 됩니다.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의 앞길이 꽃길만은 아닌 게 분명한데도, 지혜 문학 저자들은 내내 지혜를 얻기 위해 힘쓰라고 권고합니다. 무사, 무탈, 쾌락, 풍요의 세상 가치와 지혜는 방향을 달리하니까요.
그래서 지혜서 저자는 지혜를 소유하는 일의 고귀함을 전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께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신다고 다소 도전적으로 말합니다. 하느님은 모든 이를 사랑하신다고 두루뭉실하게 넘어가지 않고, 사랑받는 조건을 아주 명백하고 정확하게 한정합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만!"
복음은 바리사이들의 질문에서 촉발된 하느님 나라 이야기입니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바리사이들이 "언제 하느님의 나라가 오는지"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동안 보여 준 그들의 태도로 보아 질문의 의도가 그리 단순하고 순수하게 들리지는 않지요.
하느님 나라를 물리적인 실체로 여긴다면 이미 세상 한가운데 와 있는 하느님 나라를 놓치기 쉽습니다. 육화하신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이고, 비록 거창하거나 요란하지 않아도 세상을 진리와 선으로 지탱하는 힘이 바로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루카 17,25)
이미 와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의 나라는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사람의 아들은 세상에서 고난과 배척을 받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과 교회가 고난받고 배척받는 이, 소외되고 죽어가는 이에게서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고, 겸허히 옷깃을 여미며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기를 바라십니다. 세상의 질서와 발걸음을 함께하지 않는 하느님 나라를 알아볼 수 있는 힘이 곧 지혜입니다. 그리고 이 지혜와 함께 사는 이를 하느님은 사랑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복음 환호송)
포도나무와 가지의 표상은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가리킵니다. 지혜와 우리의 관계도 다르지 않지요. 지혜를 찾아 얻고 지혜에 머무르는 이는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와 하나가 된 바로 그 지혜께서 맺어 주시는 열매입니다. 그 열매로 세상이, 교회가 양분을 얻어 더욱 선하고 아름답게 변화됩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전히 미완성의 불완전한 세상과 이웃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청하며, 그 지혜를 꼭 붙잡고 나아가시길 기원합니다. 이렇게 지혜를 찾아 매일매일 말씀의 샘물가로 모여드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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