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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33주간 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오늘 미사의 말씀은 구원 이야기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루카 19,3-4)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보고 싶어하는 한 사람을 주목합니다.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부유한 세리 자케오입니다.


군중보다 키가 작은 탓에 예수님을 제대로 볼 수 없자 자케오는 예수님께서 가실 방향을 미리 앞질러 달려갑니다. 그리고 나무 위로 오르지요. 한 도시의 세관장이 연배로 보나 지위로 보나 쉽게 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 건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일 겁니다.

자케오는 세상적으로도 참 열심히 살던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돈과 이권을 향해 성실하게 달렸겠지요. 그는 하느님께서 주신 보물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성공을 향해 열심히만 달리면 된다고 여기는 어리석고 눈먼 열정가들의 전형입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예수님을 보고 싶어 달립니다. 물질이 아닌 사람, 그것도 하느님의 사람을 보려고 달린 일이 과연 그의 인생에 몇 번이나 있었을까요. 이제야 자케오는 물질이 아닌 의미, 육적인 일이 아닌 영적인 일을 향하기 시작한 겁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
예수님께서 먼저 그를 알아보시고, 친히 그의 집에 머무르시니 자케오는 너무 기뻐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시키시지도 요구하시지도 않은 일을 자청해 선언합니다. 자기 삶을 돌이켜서 허물을 기워갚고자 이웃에게 나눔과 보상을 약속하는 겁니다.


그림자에 불과한 세상 것을 향해 뛰느라 사람들을 착취하고 해치며 살던 그가 예수님을 보려고 달리더니, 결국 예수님을 발견해 그분과 머무르자 가난한 이들을 향해 마음을 엽니다.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고 무작정 열심히 살았던 그가 이제야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하느님의 마음이 가는 방향과 결을 같이하게 된 것이지요. 구원입니다!

제1독서인 마카베오기 하권은 유다 민족의 매우 뛰어난 율법 학자 엘아자르의 순교를 다룹니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여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2마카 6,30)
이교 제사 책임자들은 "하는 척만 해도 살려 주겠다"고 그를 회유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존경을 받는 원로 스승인 그의 변절이 이교 문화 수용에 엄청난 기폭제가 될 터였지요. 하지만 그는 잔인한 고문에도 물러서지 않고  고결한 의지를 발휘해 고통을 용감히 견디어 냅니다.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영과 마음으로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는 찰나의 안위 때문에 신앙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두 가지가 거래 불가한 가치이기 때문이지요. 위선으로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느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정향하며 살아온 엘아자르는 길을 돌이켜 위선으로 퇴보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구원의 방향을 찾은 자케오가 다시는 죄악의 진창으로 되돌아갈 이유도 없는 겁니다. "오늘 이집에 구원이 내렸"으니 멈춤 없이 후퇴 없이 그저 충실히 나아갈 일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얼굴을 보고자 몸과 마음과 영혼이 힘껏 달려나가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필요하다면 체면일랑 잊고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도 좋습니다. 영혼이 사랑하는 주님을 꼭 붙들고 결코 돌아서지  않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