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대림 2주간 목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마태 11,12)

정말로 좋은 것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습니다. 하늘, 공기, 물, 땅, 산과 들, 비와 햇빛 등 하늘이 주는 선물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십니다."(마태 5,45)

그런데 요즘은 그런 하느님의 무상의 선물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남에게는 안 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니꺼내꺼 따지고 서로 안 빼앗끼고 더 많이 가질려고 전쟁과 폭력도 불사합니다. 결국 힘있는 자가 더 많이 차지하고 힘없는 자들은 그들이 남기는 부스러기로 연명하기도 합니다. 

원래 하느님의 것이고 우리 모두가 잘 나누어 쓰라고 주신 선물인데, 그것을 마치 내 것인 양 주장하니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하늘 나라는 이렇게 폭력을 당하고 있고 무참하게 짓밟힙니다. 폭력은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전쟁, 생명경시, 자연파괴, 인권유린 등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이 땅은 원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답고 풍요로운 하늘 나라였는데, 우리 인간의 욕심과 탐욕이 하늘 나라를 폭행하여 이 모양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하늘 나라의 폭행은 당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사제들을 겨냥한 예수님의 한서린 고발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하늘 나라의 열쇠를 쥐고 있으면서도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남도 들어가지 못하게 열쇠를 치워버린 사람들"(루카 11,52 참조)입니다.

출애급 때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납니다. 모세가 시나이산에 올라가 하느님의 계명을 받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축제를 지냈었지요. 대사제인 아론도 일조하였구요.(탈출 32,1-6 참조)

애초 하느님 산에 오르려 출발한 이들을 산밑둥에 잡아앉히고 거기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들을 제공하면서 산에 오르면 생길 위험과 해악을 누차 강조합니다. 이에 타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정 가득했던 첫 목적, 첫 마음을 설익은 이상주의라고 치부해 버리고 적당한 안정과 평온에 주저앉습니다. 이제 하느님 향한 열정과 사랑은 빛바랜 옛 추억이 되어 낡은 일기장에 갇혀버리고, 왜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지 묻지도 못하며 그저 우울과 회한의 어두움에 가라앉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와 수도공동체 안에서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닐까요? 내 안에서도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합리화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어색하지 않음은 그것이 하늘 나라가 서서히 폭행당하고 있음을 증멩하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도 하늘 나라가 끊임없이 공격받는다는 걸 아십니다. 무작정 하늘 나라를 탄압하려는 폭력은 오히려 식별이 쉬워 피하기도 쉽습니다. 더 무서운 건 선과 진리를 가장하고 들어와 절충과 타협으로 하느님의 뜻과 멀어진 다른 하늘 나라를 규정하고 제한하는 폭력입니다.

벗님이여,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하느님이 주신 무상의 선물들을 잘 누리고 살다가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입니다. 원래 내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입니다. 잘 쓰고 하느님께 돌려드리며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드려야 합니다. 

내 것이라고 우기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하늘 나라를 강탈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것을 내 것이라 우기니 도둑이고 강도며 사기꾼입니다. 하늘 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마태 22,21) 일입니다. 

오늘 벗님이 하는 일이 하늘 나라를 폭행하는 일이 아니라 건설하는 일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렇게 살도록 벗님은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임마누엘' 하느님의 나라는 내려놓음과 나눔으로 확장되는 그런 나라임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바로 성탄절의 숨은 의미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기도의 한부분을 이렇게 좀 바꾸어서 바쳐봅니다.

"하늘과 땅에 우리와 함께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께서 이 땅에 만들어주신 당신의 그 아름다운 나라를 우리가 파괴하지말고 원래 모습대로 건설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