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요한 5,14)
여러분은 기도를 하면 잘 이루어집니까? 기도를 많이 하는데 하느님은 왜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걸까요?
그건 아마도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는 확신이 부족하던가, 아직 때가 아니던가, 아니면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에 따라 청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세 번째가 문제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그분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요한의 논리는 하나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을 통해서만 그분을 알 수 있고, 그분의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따라 살다보면 그분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그분의 뜻을 알게 된 사람은 복됩니다. 그 뜻에 따라 청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1요한 5,16 참조)
죄사함을 받기 위하여 세례를 베푼 것은 요한이 원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그렇게 세례를 베푸십니다. 요한이 시작한 세례운동이 예수님을 통하여 확장되고 완성됩니다. 물로 시작한 세례가 성령과 불로 완성됩니다.(루카 3,16)
요한에게서 배웁니다. 내가 시작한 일이 다른 사람을 통해 계속되고 확장, 발전되는 것이 더 큰 기쁨이란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 보통은 '원조' 논쟁을 통해, 먼저 시작한 나의 존재가치가 더 우월함을 증명하려고들 하지요. 원조 음식점들처럼 말입니다.
"나의 시작은 보잘것 없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욥 8,7 참조)라는 구절을 우리는 내가 이루어야 할 무엇으로 해석하기 쉬운데, 그 끝이 창대하게 되는 것은 나를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일 가능성이 더 많다고 여겨야 하겠습니다. 나는 시작한 것으로 충분히 행복합니다. 그 보잘것 없는 시작을 창대하게 만들어준 그 사람에게 감사하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면, 나는 또다른 세례자 요한입니다.
오늘 나의 성장과 발전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성장과 발전을 보며 크게 기뻐하는 요한의 모습에 한참을 머무르면서, 내가 추구하는 기쁨과 행복은 어떤 것인지 다시한번 돌아 보았으면 합니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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