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1요한 5,3)이고, "그분의 계명은 자기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1요한 4,21)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 자기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은 어렵거나 버겁지 않습니다.(1요한 5,3) 왜냐하면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1요한 5,4)
요한 사도는 계속해서 자신의 "사랑학 개론"을 전해줍니다. 결국 사랑입니다. 기승전'애'(起承轉愛)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도 사랑이고, 우리의 믿음도 사랑이며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래서 우리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1요한 4,19) 참으로 맞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우선되지 않았던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할 줄도, 사람을 사랑할 줄도 모르는 가여운 존재로 남았을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나자렛 회당에서 독서를 하시고 강론을 시작하시는데,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까 몹시 궁금하였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는 침묵중에 그분의 음성이 울려 퍼집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이사야가 전해 준 메시아의 소명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hic et nunc)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었다는 것입니다.
메시아의 소명이 바로 예수님의 소명이고, 그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루카 4,18-19)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행업을 계속하는 것이 메시아의 소명이고 예수님의 소명이며,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소명입니다.
이 사랑의 소명은 언뜻 세상의 탐욕 앞에 패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고 말씀하시면서 사랑은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닮은 사랑의 승리자인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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