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은 '생로병사' 하게 운명지워져 있습니다. 태어나서 늙고 죽는 것까지는 다 받아들이고 수긍하겠는데, 왜 꼭 병이 들어야만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갈수록 의술이 좋아져 평균수명이 많이 길어졌지만 병원마다 왠 환자들이 그리 많은지요. 뭐 기계도 오래 쓰면 고장이 생기고 부속을 새로 갈아끼워 넣어야 하듯이 오랜 세월 잘 사용했으니 고장날 만도 하지요. 이런 노화를 겪으면서 여기저기 고장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태어나자마자 병원신세를 지는 아이들, 아직 한참 젊은 나이에 중병에 걸린 사람들, 우울증과 조현증, 치매와 신종 바이러스에 걸려 삶이 파괴되고 있는 사람들... 왜 하느님께서는 당신 모습대로 창조하시고나서 "보시니 좋더라"(창세 1, 10.12.18)고 하신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도록 허락하시는 걸까요?
아무튼 오늘 세계 병자의 날을 맞이하여 루르드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전구와 도움으로 우리가 알고있는 환자들이 모두 치유되기를 기도합니다.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 6,56) 아멘.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보다 "사람들"(마르 6,54)의 움직임이 역동적으로 부각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눕혀", "데려다 놓고", 치유를 "청"합니다.
복음의 다른 치유 기적사화들에서는 예수님께서 친히 손을 대어 치유해 주시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좀 특이하게도 사람들이 데려다 놓은 병자들이 직접 팔을 뻗어 "옷자락 술"(마르 6,56)에 손을 대고 치유를 받습니다.
독서는 성경의 첫 부분인 창세기의 창조 설화로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는"(창세 1,2) 세상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아름다운 '빛, 하늘, 땅과 바다와 푸른 싹, 빛물체들'이 나흘 동안 차례로 생겨나지요.
시편 저자는 세상 만물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이 모든 창조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주 저희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존귀하십니까! ... 우러러 당신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당신 손가락의 작품들을, 당신께서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시편 2,4)
우리는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압니다. 이 '하느님의 손'이나 '손가락'은 하느님께서 친히 이루신 위엄과 권능의 업적임을 드러낼 때 성경 저자들이 즐겨 썼던 표현이지요.
그런데 복음에서는 전혀 다른 손들이 등장합니다. 자기 일처럼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병자들을 챙겨 데리고 온 손들, 그리고 치유의 일념으로 가득 차 장터를 지나가시는 예수님(의 옷자락 술)을 향해 힘껏 내뻗은 병자들의 손들. 누구에게 손을 대려고 팔을 뻗는 것은 아무 의미없이 그냥 해보는 행동이 아닐 겁니다. 의도와 방향성과 목표를 지닌 신념의 표출이지요.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 6,56)
첫번째 창조가 하느님의 손으로 이루어졌다면, 이 자리에서는 병자들을 도와주는 이들의 손과, 믿음에 차 내뻗은 병자들 스스로의 손을 통해 재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첫 창조 때와 마찬가지로(잠언 8,22-31 참조) 새 창조의 현장에도 예수님께서 현존하십니다. 저마다 부족하고 약한 인간을 통해 오늘도 세상의 혼돈과 어둠을 헤치고 새로운 창조를 이룩하시는 하느님의 업적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혹 여러분은 병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계십니까? 주위에 그런 분이 계시지요? 이 고통스런 병이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사업에 기여하기 위한 봉헌이라면 무의미하지는 않겠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고통에 동참하는 것이라면 가치있는 고통이겠지요.
오늘 생로병사의 인간이 필연적으로 거쳐야만하는 병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하느님께 봉헌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함께 아파하시며 그 고통을 축복하고 계심을 굳게 믿으시길 청합니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서 당신의 기적수로 원죄의 업보로 얻게 된 이 병까지도 깨끗하게 치유시켜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여, 저희를 위하여 빌으시어 모든 병자들을 고통에서 치유시켜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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