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들 안에서는 하느님의 것과 인간의 것이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합니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마르 7,9).
예수님의 몇몇 제자가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하느님의 것(계명)과 사람의 것(전통) 사이의 질서를 바로 세워 주시지요.
"성경"(마르 7,6)
"하느님의 계명"(마르 7,8)
"하느님의 말씀"(마르 7,13)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하며, 삶과 예배의 근간이 되는 본질을 일러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친히 내리신 "계명"을 받은 민족으로서, 예언자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이며, 그 기록인 "성경"을 소유한 특별한 백성입니다.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마르 7,13).
그런데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이 잣대 삼아 사람을 판단하는 근거는 "조상들의 전통"(마르 7,3)과 "관습"(마르 7,4)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만들어낸 전통과 관습이 하느님의 말씀과 계명을 밀어내고, 심지어 우위를 차지하는 듯 보이는 현실을 지적하십니다.
인간은 무지몽매한 시야와 편협한 자기중심성으로 하느님의 것과 인간의 것을 전복시켜 질서를 교란해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에게서 본래 받은 선물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고 열심히 포장지만 덧씌우거나 장식하며 무게와 부피만 키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성전을 봉헌하는 솔로몬의 아름다운 기도가 울려퍼집니다.
"기도"(1열왕 8,23.28.29.)
"간청"(1열왕 8,28.30)
"부르짖음"(1열왕 8,28)
솔로몬의 기도에 반복해 등장하는 이 말씀들은 인간의 위치와 처지, 실존을 드러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기도하고 간청하고 부르짖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 앞의 인간은 그가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기도하는 존재'입니다.
"들어 주십시오"(1열왕 8,28.29.30)
"살피시어"(1열왕 8,29)
"용서해 주십시오"(1열왕 8,30)
솔로몬은 하느님께서 듣고 살피고 용서하는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받은 그는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인식하는 현자입니다. 그는 인간의 얕은 꾀로 하느님의 자리를 넘보거나 사람의 것과 뒤바꾸지 않습니다. 아무리 호화롭게 임금의 영화를 누리고 있어도 자신이 들으시고 살피시고 용서하시는 하느님 앞의 작은 자임을 잊지 않습니다.
오늘 솔로몬이 하느님께 지어 바친 성전은 그런 하느님과 그런 인간이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그런 하느님과 그런 인간이 하나 되는 순간이지요.
복음 안에 등장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진정 진리와 영 안에서 기도하고 예배하는 사람들이었다면, 하느님의 자리와 인간의 자리를, 하느님의 것과 인간의 것을 뒤바꾸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하나가 된 이는 오히려 그분과 자신 사이의 관계성과 질서를 더 명확히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당신 앞에서 걷는 종들에게 당신은 계약을 지키시고 자애를 베푸시는 분"(1열왕 8,23).
그분과 우리의 접점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관습이나 전통 너머에 자리하는 그분의 마음과 생각, 뜻을 헤아리며 마음을 다해 그분 앞을 걸어갑니다. 그분은 부족한 채로 더 사랑해 보려고 까치발로 종종걸음을 치는 우리의 진심을 보시고 당신 약속을 기억해 자애를 베푸십니다.
사랑하는 벗님, 오늘 나의 삶 안에는 하느님의 것과 사람의 것이 제자리에 놓여 있는지, 나의 기도 안에서 하느님은 하느님이시고 나는 나인지 돌아보는 하루 되셨으면 합니다. 하느님과 하나 됨은 두서없는 뒤섞임이나 뒤엉킴이 아니라 각자의 자기다움이 근간을 이룰 때 일어나는 신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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