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 안에서 우리는 마음속에 무엇을 간직해야 하는지 배웁니다.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마르 7,15).
바리사이, 율법 학자들과 전통 논쟁이 끝난 뒤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십니다. 음식이나 사물, 심지어 사람에게까지 부정과 금기의 프레임을 씌워 구분하는 못된 행위를 지적하시는 겁니다.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마르 7,19).
이 말씀을 바꾸어 표현하면, 모든 피조물은 깨끗하고, 모든 인간은 깨끗하며, 하느님의 말씀에서 나온 모든 존재는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불결함과 부정함의 요인은 외부에 있지 않고 각자의 내면에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마르 7,20).
사실 우리 안에 온갖 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정하게 만드는 가능성이 외부에 있지 않고 내면에 존재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의 관심을 받아 활성화되면 외부로 표출되어 자신과 타인을 공격하는 악의 꼴을 갖추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이면서 동시에 세상과 육신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에, 내면에 선과 악이 공존하며 긴장 상태를 유지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은총과 모상성보다, 부정하고 더럽고 어두운 악을 더 주목하고 건드리고 허용할수록, 악은 힘을 받아 더 커지고 드세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 영혼은 불쌍하게도 그 악에 휘둘려 더 피폐해질 뿐이지요. 그러니 영성 생활에서는, 우선 자신 안에 있는 악한 것들을 인정하되, 거기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시선을 들어 하느님을 향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제1독서에서는 참으로 신비스럽고 매력적인 여인이 등장합니다. 바로 스바 여왕입니다.
"여왕은 솔로몬에게 와서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을 모두 물어보았다"(1열왕 10,2).
요즘같이 교통이 발달한 시대도 아닌데 한 여왕이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사막을 지나고 국경을 건너는 험한 여행길에 오릅니다. 지혜를 찾는 그녀의 여정은 그녀가 마음 저 깊이에서부터 지혜를 갈망하는 여인임을 증명합니다.
"지혜를 듣는 이 신하들이야말로 행복합니다"(1열왕 10,8).
이방인 여왕의 입을 통해 솔로몬의 지혜와 하느님의 영광이 고백됩니다. 게다가 현자 가까이에서 지혜를 듣는 이들의 행복 또한 일깨우지요. 이렇게 지혜를 알아보는 이 역시 지혜의 사람일 공산이 매우 큽니다.
분명 복음에서는 사람의 마음이 온갖 악의 온상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스바 여왕은 마음속에 이토록 강렬히 지혜에 대한 갈망과 사랑을 간직할 수 있었을까요? 이 질문을 우리에게로 돌리면, 그토록 죄 많고 부족하고 악한 우리가 어떻게 죄악에 주저앉지 않고 은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사실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 안에 온갖 악이 들어있는 것 맞지요.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마르 7,21-22)들 입니다 조금만 멈추어 성찰해 보아도 "저는 아니겠지요?" 하며 짐짓 모른 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답을 오늘의 복음 환호송에서 찾습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진리이시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소서"(복음 환호송).
진리가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자신 안에 온갖 더럽고 추하고 악한 죄를 안고 살면서도 지혜이신 말씀, 진리이신 말씀에 지치지 않고 머무르면, 그 말씀이 우리를 깨끗이 정화하고 거룩히 성화하여 주십니다. 말씀은 듣는 우리를 흡수하여 당신과 닮은 존재로 형성하고 창조하는, 살아있는 힘이십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가 더 낮추어질 수 없을 만큼 비천하고 초라한 죄인일망정 말씀께서는 우리게 다가오셔서 머무르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것이니, 온 힘을 다해 지혜를 구합시다. 온 마음으로 진리를 찾고, 온 존재로 예수님께 달려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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