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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사순 제 5주간 목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오늘 독서와 복음에는 "영원"이란 말씀이 자주 등장합니다. 영원성은 하느님과 인간 존재의 상이성을 확연히 드러내는 속성 중 하나입니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요한 8,51)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문제로 조급해진 유다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렇듯 정면으로 직구를 던지신 겁니다.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는, 즉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존재는 오직 하느님뿐이십니다. 유다인들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감히' 겁도 없이 당신 말을 지키면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고 단언하신 것이지요. 이제 그들은 예수님을 하느님과 한 카테고리로 묶든지, 아니면 더 볼 것 없이 마귀들린 자로 분류하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합니다. 믿어야 하는가, 단죄해야 하는가, 즉 하느님, 아니면 마귀입니다.

독서에서 하느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십니다.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아브람에게 하느님께서 먼저 "나를 보아라."(창세 17,4) 하시지요. 이 말씀 안에는 온기가 흐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과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고자 하시는 겁니다. 두려워 벌벌떨며 감히 눈도 못 마주치는 관계에서는 억압과 굴종을 주고받을 뿐,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기대하기 어려우니까요. 하느님께서 먼저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창세 17,7.8)고 하시며 땅과 자손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어 주신 그에게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창세 17,9)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지켜야할 계약의 내용은 뒤로 이어질 것입니다.

하느님도 예수님도 "지키다"는 말씀을 줄곧 하십니다. 사실 이 단어의 의미는 다양합니다. 집을 지키고 국경을 지키는 것처럼 '수호하다'는 의미도 될 수 있고, 약속이나 계명을 '준수하다, 실천하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를 '보호하고 존중하다'는 의미도 되지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을 지키라는 말씀과 더불어, 당신 역시 아버지의 말씀을 지킨다고 이야기하십니다.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요한 8,55)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개를 들어 당신을 보아도 좋다고 하시고, 이름도 주시고, 땅과 후손을 약속해 주시고, 친히 하느님이 되어주시겠다고 먼저 호의를 드러내신 후 "지키라"고 말씀하셨지요.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뜻과 계명, 말씀을 지키는 것이 온기 없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위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실 때 존재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사랑과 진실로 그렇게 하십니다. 또 우리에게 당신 말씀을 지키라 하시는 것도 사랑과 진실의 토대 위에서 그리 하라고, 진정으로 사랑하면 그리 하게 되어 있다고 하시는 것이지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전체 질서를 존중하고 자기와 타인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다분히 강제성을 띠고 있는 법을 지키지요.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 계명, 뜻을 지키라고 우리를 이끄는 힘은 강제성이 아니라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입니다. 그분 말씀의 귀하고 소중한 가치를 알기에 미천한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고 열매로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처음 아브라함에게 "지키라" 하셨듯이, 지금 이 자리에서 예수님이 아브라함을 언급하시며 유다인들에게 "지키라" 하시지만, 유다인들은 자기들의 대선조인 아브라함에 대한 언급에 그만 걸려넘어지고 맙니다. 맥락을 놓쳐버린 그들이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 한 것은, 예수님의 영원성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을 반증합니다. 이 영원성을 인정함은 곧 그분의 신성을 인정하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아무리 진리를 말씀하셔도 그들은 듣지 않을 겁니다. 이 모든 여정들은 예수님께서 겪으실 파스카의 절정을 향해 촘촘하게 엮어지는 중입니다. 적대적으로 어둠을 향해 치달아가는 이 대목에서 비록 상황은 악화되어 가지만 우리의 주인공이신 예수님 마음 안에 유다인들을 향한 따뜻한 온기, 진실된 사랑이 가시지 않기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갑갑하고 속 터지는 울분에 질식되지 않고 담담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을 원하시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기만 하면 됩니다. 억지로, 강제적으로 지키려 해서는 제대로 지킬 수 없습니다. 하느님 사랑 때문에, 예수님 사랑 때문에 즐거운 마음, 기꺼운 마음으로 지킴으로써 하느님의 "영원성"에 참여하는 복락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