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순 제5주일 복음에는 아주 급박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시던 예수님 앞에 한 여인이 끌려온 겁니다.
"스승님 이 여자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요한 8,4-5)
우문현답(愚問賢答)이 오고갑니다.
"이 죄지은 여인을 모세 명령대로 죽일까요? 아니면 당신이 말하는 그 잘난 사랑으로 용서해 보낼까요? 후자라면 당신은 율법에 저촉이 됩니다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과 당신의 가르침 모두를 아우르는 답을 주시면서, 이 일을 꾸민 이들과 구경꾼들 모두를 자기 성찰의 기회로 이끄십니다.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아무 죄도 짓지 않고 살기 어렵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니, 누구도 타인을 단죄하고 목숨을 앗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상황 종료 후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처음 말을 거십니다.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요한 8,10)
그분은 무슨 일이 있었냐고 언제 왜 그랬냐고 따져물어 그녀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네 수치를 드러내고 생명을 위협하던 이들이 곁에 있는지, 그녀가 곤혹스러워하지 않으면서 답할 수 있는 물음을 던지십니다.
"아무도 없습니다."(요한 8,11)
이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많은 경우 자기의 약함과 부족함, 실수·실패를 단죄하는 이는 외부에 있지 않습니다. 잠시 손가락질을 할 수는 있어도 저마다 제 꼴과 제 삶에 바빠 남의 죄에 인생을 걸고 쫓아다니며 집요하게 단죄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자기 죄를 낱낱이 까발리면서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존재는 자기 자신일 겁니다. 하느님께 가는데 있어 자기 성찰과 자기 인식은 분명 중요한 과정이지만 자기에 대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의 시선이 빠진 성찰은 지나치면 영혼에 독이 되어 오히려 하느님과의 관계를 해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여인은 앞으로도 골백번 두렵고 수치스런 오늘의 기억이 올라올 때마다 자기가 했던 이 고백을 반복해야 할 겁니다. 마음이 스스로를 속여 어둠으로 끌고가려 해도 의지적으로라도 "아무도 없다."고 외쳐야 합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요한 8,11)
예수님도 그녀의 대답에 힘을 실어 주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인류 구원을 위한 희생 제사가 시작된 이상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음을, 그러니 누구도 서로를 단죄하지 말아야 함을 밝히신 겁니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이사 43,18)
이미 "새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현재 우리가 온갖 우상(돈, 명예, 권력, 안전, 자기 자신)보다 하느님을 덜 사랑했던 불륜과 배신의 진홍빛 기억을 우리 힘으로는 하얗게 되돌릴 수 없기에 하느님께서 친히 나서셔야 가능합니다. 새롭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의지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기에 온갖 계명을 다 지키고 사랑을 실천한다 해도 신이 아닌 이상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설령 그리 한다 해도 내가 그럴듯하게 만든 "나의 의로움"(필리 3,9)에 불과할 겁니다. 하지만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고, 내 인생과 기억에서 깡그리 지워버리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부끄러운 죄악의 흉터를 겸손히 끌어안은 채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필리 3,9)을 얻을 수는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죄인인 인간의 실존을 겸허히 받아 안은 사도 바오로는 우리에게 희망의 말씀을 전합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필리 3,13)
비록 우리가 이미 저지른 죄 자체와 죄스런 기억과 죄로 얼그러진 자기 영혼을 자기 힘으로 되돌릴 순 없어도, 뒤의 것을 잊고 앞을 향해 내달릴 수는 있습니다. 그냥 거기에 발을 담그고 한탄과 우울 속에 살라고 시시때때로 발목을 잡는 죄와 어둠의 손길이 없을 수 없겠지만, 그때마다 몸을 일으켜, 예전의 일들을 기억조차 않으시는 하느님 품으로 내달려야 합니다.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복음 속 여인과 함께 온 힘을 다해 고백하며 내달려야 합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이사 43,19)
벗님 여러분, 부활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루실 깜짝놀랄 만한 새 일입니다. 이 부활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할 일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지고한 가치를 지닌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여,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통에 잘 참여하여 부활에 이르는 길을 찾는냐 하는 것입니다.(필리 3,8-11 참조) 내 안에 있는 어두움과 고통, 죄와 허물,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과 단죄 등을 되돌아보며 성찰합시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자비를 바라보며, 오늘 새롭게 거듭난 여인처럼 우리도 힘차게 다시 시작하는 은총을 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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