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활 제3주일 (사도 5,27-41; 묵시 5,11-14; 요한 21,1-19) |
제1독서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5,27ㄴ-32.40ㄴ-41
그 무렵 대사제가 사도들을 27 신문하였다.
28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9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30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32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그들은 사도들에게
40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살해된 어린양은 권능과 부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5,11-14
나 요한은 11 어좌와 생물들과 원로들을 에워싼 많은 천사들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들의 수는 수백만 수억만이었습니다.
12 그들이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살해된 어린양은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미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13 그리고 나는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
그 모든 곳에 있는 만물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양께
찬미와 영예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14 그러자 네 생물은 “아멘!” 하고 화답하고
원로들은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19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15 그들이 아침을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16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7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1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인간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통해 창조주와 피조물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선하고 진실된 대화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건네시는 말씀들을 곱씹어 봅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요한 21,5)
주님께서는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지, 보람과 의미를 얻고 있는지 물으십니다. 잘 되어 가는지, 부족한 건 없는지, 본질을 향하고 있는지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
주님께서 육신에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챙겨 주십니다. 사람은 빵(밥)만으로는 살 수 없지만, 빵(밥)도 있어야 살지요. 일차적인 육신의 허기를 채워주시면서 결국 당신 스스로 먹이가 되어 주십니다.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5.16.17)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고 주인이신 그분이 보잘것없는 우리의 사랑을 원하십니다. 불쌍한 죄인인 우리가 뭐라고 주인이 종에게 사랑을 구걸하시는지...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7)
형편없이 부족하고 모자란 우리에게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을 맡기십니다. 우리 면모를 속속들이 아시는 그분께서 지금 모험을 하시는 게지요. 사랑의 모험! 일단 믿고 보는 사랑입니다. 믿을 만 해서 믿어 주시는 게 아니라, 믿었으니 믿을 만 하게 되리라 여기십니다. 그 덕에 우리에게 소명이 주어집니다.
"나를 따라라."(요한 21,19)
복음서 초반에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이 말씀을 하셨지요. 당신을 따르라고, 함께하자고, 닮으라고, 하나되자고, 일치하자고 하십니다. 따름을 명하시는 목적은 양적 팽창이나 세력 확장이 아닙니다. 당신처럼 벗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또 다른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분신들을 통해 당신 친히 세상에 현존하시려는 겁니다. 대신 죽는 바보같은 사랑으로 세상에 만연된 악을 이기시려는 것입니다.
이에 화답하듯 제자들의 응답이 독서 안에 가득합니다.
"주님이십니다."(요한 21,7)
사랑하시던 제자가 주님을 알아봅니다. 직관입니다. 감각을 통한 외양이 아니라 심장을 봅니다. 본질을 읽습니다. 현존하시는 주님을 알아볼 때 그분 마음이 얼마나 기쁘실지 상상해 봅니다. 너를 사랑하는 나를 알아본다면, 너를 향한 내 사랑을 알아봐준다면 나는 너를 위해 골백 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실 분입니다.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요한 21,8)
주님이 우리에게 쏟아부어 주시는 은총과 자비를 지탱하기엔 사실 우리는 터무니없이 작습니다. 작디 작아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몰골로 감당도 못할 엄청난 사랑을 지고 있으면서 자기가 받은 선물이 뭔지 깨닫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그 선물을 보물이 아니라 부담스런 짐짝이나 고통스런 십자가처럼 질질 끌며 가고 있지요. 제자들의 "그 작은 배"도 백쉰세 마리의 커다란 물고기가 든 그물을 매단 채 뭍으로 들어옵니다. 우리는 작지만 부끄러워하지 말고 온 힘을 다해 은총의 선물로 터질 듯한 그물을 주님 앞으로 다시 끌고 가야 합니다. 본래 주인 발 앞에 놓아드려야 합니다.
"예. 주님!"(요한 21,15)
주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으실 때 지체없이 대답해야 합니다. 이 응답은 예수님의 입을 귀에 걸리게 하고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리게 만듭니다. 사랑의 응답은 물음처럼 명료합니다. 답을 주저하며 변명거리를 찾고 있다면 아직 또는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예" 아니면 "아니오"만 존재합니다. 사랑한다면 정도룬 따지거나 퍼센트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제1독서에서도 인간이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아름다운 응답들이 언급됩니다.
"순종"(사도 5,32)과 "그 이름 때문에 모욕당함을 기뻐함"(사도 5,41 참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항상 인간의 곁에 머무르시려고 인간을 한 치 앞도 모르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모든 걸 아시는 그분이 계시기에 인간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하느님 뜻에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 때문에 겪게 될 환난과 모욕과 박해, 죽음까지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기쁨은 주님을 향한 무한한 신뢰의 표현이기 때문이지요.
"어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양께 찬미와 영예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묵시 5,13)
참으로,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모든 피조물과 만물이 소리 높여 아버지와 아드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받으셔야 할 흥숭과 찬미와 영광이 그분께 올려지고, 온 세상이 사랑에 취해 기뻐 뛰며 소리칩니다. 주님께 모든 피조물의 사랑이 모아집니다. 그분께 그러는 것이 과연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이렇듯 하느님과 우리 사이는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그분과 우리는 서로를 마주한 채 신뢰와 바람과 사랑을 주고받는 사이입니다. 마땅히 흠숭과 사랑을 받으셔야 할 주님과, 그분 사랑으로 숨 쉬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렇듯 아름답고 선하고 참되게 사랑의 실을 자아 나갑니다. 우리 사랑이 날줄과 씨줄로 엮여 이렇듯 구원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특별히 베드로에게 던지시는 주님의 세번에 걸친 질문이 마음에 꽂힙니다. 주님께서 오늘 저보고 이렇게 물으시네요. "바오로야,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과연 나는 베드로처럼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이렇게 답할 것 같네요.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기는 하는데요. 다른 이들보다 더 사랑한다고는 말씀 못드리겠어요."
예수님은 이번엔 질문을 조금 바꾸어서 "프란치스코의 아들 바오로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세번째도 그렇게 물으십니다. 베드로마저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였지만 다른 이들보다 더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는 못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주님은 우리에게 최고를 바라시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부족하지만 주님을 사랑하기만 하면 족하다고 하십니다. 다만 그 사랑을 더 키우기 위해서 우리에게 일을 맡기십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우리도 주님께 대한 사랑이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주님께서 나에게 맡기시는 일을 충실히 해 나가면 됩니다. 오늘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시는 사랑의 일을 충실히 함으로써 주님께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날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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