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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부활 제 3주간 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 ✝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사도 6,8-15; 요한 6,22-29) 

제1독서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6,8-15
그 무렵 8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11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우리는 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2 또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을 부추기고 나서,
느닷없이 그를 붙잡아 최고 의회로 끌고 갔다.
13 거기에서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이런 말을 하게 하였다.
“이 사람은 끊임없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합니다.
14 사실 저희는 그 나자렛 사람 예수가 이곳을 허물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물려준 관습들을 뜯어고칠 것이라고,
이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15 그러자 최고 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22-29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뒤,
제자들은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22 이튿날, 호수 건너편에 남아 있던 군중은, 그곳에 배가 한 척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고 가지 않으시고
제자들만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3 그런데 티베리아스에서 배 몇 척이,
주님께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나누어 먹이신 곳에 가까이 와 닿았다.
24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군중이 예수님을 찾아다닙니다. 배들에 나누어 타고 티베리아스에서 빵을 나누어 먹이신 곳으로, 또 카파르나움으로 움직입니다. 그들이 체험한 기적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기에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이처럼 그분을 찾아 헤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제자들은 스승의 인기에 으쓱했을지 몰라도 예수님은 군중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계십니다. 그리고 육적으로 허기를 채워줄 메시아를 찾아 헤매는 그들에게, 거기서 그치지 말고 영혼과 존재의 허기를 채우는 길로 들어서라고 초대하시지요.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지만 빵도 있어야 살지요.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먼저 육신의 빵을, 육적인 관계를 채워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지어내신 후 양식과 배우자, 자녀, 이웃, 재물, 직업을 허락하신 건, 그 모든 물적 선물이 하느님께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라는 뜻일 겁니다. 세상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인간 사이에 주고받는 사랑을 통해 하느님과의 사랑을, 육적인 만족과 기쁨을 통해 영원한 행복을 감지하게 하시는 거지요.

지상에서 누리는 관계의 축복은 세상 모든 피조물, 천상 벗들, 하느님과 누릴 행복을 바라게 하고, 육적 생명을 지탱해 줄 일용할 양식의 축복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찾게 되며, 직업과 성취와 공헌의 축복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건설할 꿈을 꾸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눈앞에 있는 현세적 축복에 만족해 그것만 더 찾고 몰두하고 추구하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도 군중이 딱 거기서 멈출까 봐, 그저 육적인 만족에 그쳐 이미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영적 선물은 꿈도 꾸지 않을까 봐 애가 타실 것 같습니다.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요한 6,28)
군중이 육적인 차원에서 영적인 차원으로 넘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여쭙니다. 다행히 그들 영혹 깊은 곳에 묻혀있던 갈망이 건드려진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 6,29)
믿음에서 출발해야 영혼의 사정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 영원한 생명, 영적 삶이 곧 하느님의 일입니다. 구원자로 오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간의 시선은 지상에 머물지 않고 천상을 향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 또한 육적 포만감에 만족하지 않고 영원한 행복을 꿈꾸게 됩니다.

그러니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요한 6,25)라는 말씀처럼, 군중이 예수님을 찾아 "건너편"으로 넘어왔다는 것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육을 지녔으나 영원을 추구하는 우리 모두는 결국 "건너가야 하는"(파스카) 존재입니다. 육에 만족해 주저앉기보다 영원을 향해 일어서서 떠나고 건너야 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건너가야 비로소 얻게 되는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독서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순교한 첫 사람, 스테파노가 등장합니다. "그의 말에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 없었다."(사도 6,10) 적대자들이 아무리 스테파노와 논쟁에서 이기려 해도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사도 6,8) 그를 누를 수 없습니다. "그의 얼굴은 천사처럼 보였다."(사도 6,15)는 말에서 이미 그가 지상 사물이나 욕망을 뛰어넘은 존재임이 드러납니다. 그가 이미 얻은 영적 충만함과 평화는 인간의 중상모략이나 폭력에 의해 훼손될 수 없기에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동요하지 않습니다. 스테파노는 이미 육적 차원에서 영원의 차원으로 건너간 존재이기에 그렇습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영성체송)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세상의 평화 &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 육적인 만족 & 영혼의 충만함? 정지 상태 & 건너감? 선택과 응답은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올바른 선택으로 스테파노처럼, 은총과 능력이 충만하고 천사같은 모습을 지닌 벗님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