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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14주간 수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연중 제14주간 수요일(호세아10,1-12/마태오10,1-7)

제1독서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0,1-3.7-8.12
1 이스라엘은 가지가 무성한 포도나무, 열매를 잘 맺는다.
그러나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들도 많이 만들고
땅이 좋아질수록 기념 기둥들도 좋게 만들었다.
2 그들의 마음이 거짓으로 가득하니 이제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분께서 그 제단들을 부수시고
그 기념 기둥들을 허물어 버리시리라.
3 이제 그들은 말하리라.
“우리가 주님을 경외하지 않아서 임금이 없지만
임금이 있다 한들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리오?”
7 사마리아는 망하리라. 그 임금은 물 위에 뜬 나뭇가지 같으리라.
8 이스라엘의 죄악인 아웬의 산당들은 무너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그 제단들 위까지 올라가리라.
그때에 그들은 산들에게 “우리를 덮쳐 다오!”,
언덕들에게 “우리 위로 무너져 다오!” 하고 말하리라.
12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때"를 숙고하도록 초대합니다.

제1독서에서 호세아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들춥니다.

"그들의 마음이 거짓으로 가득하니 이제 죗값을 치러야 한다"(호세 10,2).

주님께서 풍요와 번영을 허락하시고 축복을 베푸실수록 이스라엘은 우상을 위한 제단 수를 늘이고 기념 기둥들을 더 세웁니다. 참 이상하지요. 꼭 이스라엘뿐 아니라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주님께서 잘 살게 해 주시면 해 주실수록 더 잘 살 궁리를 하면서 다른 주인을 찾기 일쑤이니 말입니다.

예언자는 이제 곧 이스라엘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의지하던 산당들은 무너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제단들 위에까지 뒤덮일 황폐와 멸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백성은 우상 따위에는 관심조차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하고 피폐해져 이 모든 몰락을 하릴없이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호세 10,12).

하지만 주님의 날은 단순히 주님을 배반한 이들에게 쏟아지는 분풀이나 징벌의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날의 도래는 주님 곁을 떠났던 백성이 다시 주님께 돌아와 제 자리를 찾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세상의 주인을 좇느라 무뎌진 영적 감각, 하느님의 목소리가 뚫고 들어올 수 없이 굳어버린 마음, 두꺼워질대로 두꺼워져 굳은 살로 뒤덮여 버린 양심... 이 묵은 땅은 뒤집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가까이 오신 주님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러니 모든 것이 무너지고 전복된 지금이 주님과의 사랑을 회복할 때입니다. 주님 앞에 자신의 제자리를 되찾을 때입니다.

복음은 열두 제자의 선정과 예수님의 당부를 들려 줍니다.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마태 10,1).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이들 중에서 특별히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명을 뽑아 사도라 부르십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예수님 "가까이" 다가간 것이지요.

주님 "가까이"는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영혼의 제자리입니다. 거기에 서서 거기에 머물러 거기서 주님과 지내야만 제자로서 사도로서 다음 스텝이 나올 수 있습니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마태 10,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질병과 마귀에 시달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도와줄 수 있도록 권한과 능력을 주십니다. 제자들의 영달을 위한 게 아니라 하느님 백성을 위한 것입니다.

"하늘 나라"
하느님 주권, 곧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랑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를 가리킵니다. 이제 그날, 하느님의 때, 하늘 나라가 실현되는 때는 징벌과 멸망의 아비규환이 아니라 위로와 희망의 장이 됩니다. 이방인 압제에 신음하며 희망을 잃어가는 이스라엘에게 치유와 회복을 알리는 시간과 공간입니다.

하느님의 때를 징벌과 멸망의 종말로만 받아들인다면 두려움과 거부감이 크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 "때"를, 우리 영혼을 저 밑바닥부터 뒤집어 산소를 불어넣고 수분과 영양을 공급하는 때, 고착된 자아에서 거미줄을 걷고 먼지를 털어내어 새롭게 단장하는 때, 길 잃고 헤매던 영혼이 진리를 듣고 제 길에 들어서 생기를 되찾는 때로 보여주십니다. 당신이 먼저 우리에게 위로의 존재가 되셨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그런 존재로 양성해 파견하시지요.

어차피 그때와 그 시간은 아버지 외에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언제인지를 가늠하며 따지는 것은 우리 소관이 아니지요. 우리는 그저 두려움보다는 희망으로, 미련보다는 기대로 하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며 주님 가까이, 제자리에 머무르면 됩니다.

사랑하는 벗님! 주님 가까이에 머무르며 주님을 찾는 영혼에게 주님의 때는 먼 미래의 언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입니다. 당장 맞이해도 여한 없이 충만한 사랑 속에 하늘 나라를 쟁취하는 것이지요.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지금 여기, 우리 자신에게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미처 못다한 사랑의 책무에 두려워 떨지 말고 가진 것을 다 못 누렸다고 아쉬워도 말고 담담하고 충만히 오늘의 하늘 나라를 누리며 나아가길 축원합니다. 그분은 위로와 자비의 주님이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