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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연중 제 14주간 목요일 / 오상선 신부님 ~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호세아11,1-4.8ㅁ-9/마태오10,7-15 )

제1독서

<내 마음이 미어진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1,1-4.8ㅁ-9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2 그러나 내가 부를수록 그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들은 바알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우상들에게 향을 피워 올렸다.
3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4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8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9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우리는 평화를 주러 오신 주님을 만납니다.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 나는 그를 사랑하여"(호세 11,1)

제1독서는 주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경로와 과정을 거쳐왔는지 매우 인간적인 표현으로 생생히 전달합니다. 주님은 마치 부모가 제 속으로 낳은 아기에게 하듯 이스라엘에 온 정성과 사랑을 쏟으셨지요.

"그러나 내가 부를수록 그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호세 11,2).

슬프게도 이것이 그 지고지순한 주님 사랑의 결과입니다. 이스라엘은 쏟아지는 주님 사랑을 누리면서도 다른 사랑에 탐닉하지요. 그들을 매료시킨 바알들과 우상들은 당장의 풍요와 쾌락, 권력을 약속하며 이스라엘 안에 자리를 잡아갑니다.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호세 11,9).

성경은 배반한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 분노의 자취들을 감추지 않고 기록했습니다. 주님은 당신 백성을 달래기도 하시고 호소도 하시다가 분노하여 이웃 나라에 넘기기도 하셨지요.

그런데 지금 주님은 이스라엘이 여전히 당신을 소외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노로 다가가지 않으시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주님을 지배하는 연민의 사랑이 분노 대신 다른 길을 찾은 까닭이지요.

"앓는 이들을 고쳐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마태 10,8).

더 이상 분노를 안고 이스라엘에게 다가가지 않겠다고 하신 하느님께서 이제 당신 아드님을 통해 백성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의 완전한 구현이시지요. 예수님은 치유, 정화, 구마, 되살림, 용서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다가가 사랑과 자비를 쏟아 주십니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마태 10,12).

예수님은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제자단을 구성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십니다. 열둘로 구성된 최초의 제자단은 그들로 끝나지 않고 대를 이어 전승되고 확장되어 온 세상에 이르기까지, 세상 끝 날까지 이를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도 당신이 하시던 일을 할 수 있도록 권한과 능럭을 주시는 동시에 평화의 전파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누구를 만나든, 어느 집에 들어가든 평화의 인사를 하는 이야말로 주님의 제자입니다.

분노를 거두신 하느님께서 죄를 묻지 않고 용서를 선언하시는 성자 예수님을 통해 백성에게 다가오셨고, 이제는 제자들을 통해 평화로 다가오시는 겁니다. 사실 주님께 배반하던 이스라엘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불충한 우리지만, 주님께서 우리의 안 변하고 못 변하는 죄스런 실존을 인내와 용서로 받아안으신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까지 도달한 평화의 축복이 되십니다.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마태 10,13).

그런데 그 평화는 마땅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고 하시네요. 빌어주는 평화가 진정한 축복이 되려면 받는 이도 합당하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겁니다. 평화는 일방적으로 강요되거나 주입될 수 없는 덕이니까요.

과연 어떤 사람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한 존재일지 오늘 말씀 안에서 찾아봅니다.

"그들은 ... 알지 못하였다"(호세 11,3).

자신이 주님의 사랑받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그 사랑에 응답하는 사람은 평화를 누리기에 합당합니다. 제1독서의 이스라엘이 놓친 부분이지요. 자기에게 쏟아지는 주님의 사랑과 자비, 은총과 돌봄을 알고 감사하는 이는 자기 삶을 계획하고 이끄시는 주님의 주도권과 섭리에 자신을 맡기기에 평화롭습니다. 아니, 그 자신이 이미 평화의 사람이고 평화일지도 모르지요.

사랑하는 벗님! 우리의 소중한 이웃들이 빌어 주는 평화가 이미 우리 집 문간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평화는 예수님을 통해, 제자들을 통해, 제자의 제자를 통해 우리에게까지 오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이렇게 매일 말씀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며 의탁의 삶을 살아가는 벗님은 그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한 사람이지요. 그 평화를 한껏 누리는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평화를 빕니다. 평화를 빕니다. 평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