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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라테라노 성전 봉헌 축일 / 오상선 신부님 ~

11월 9일 수요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제1독서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네.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두 구원을 받았네(따름 노래 “성전 오른쪽에서”).>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47,1-2.8-9.12
그 무렵 천사가 1 나를 데리고 주님의 집 어귀로 돌아갔다.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은 주님의 집 오른쪽 밑에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2 그는 또 나를 데리고 북쪽 대문으로 나가서,
밖을 돌아 동쪽 대문 밖으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보니 물이 오른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8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9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3-22
13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14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16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7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18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0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요한 2,13).


오늘 복음 대목의 첫 구절이 의미심장합니다.

"건너감"이라는 뜻의 파스카는 죽음의 천사가 어린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민족의 집안을 거르고 지나간 것과,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마른 땅을 밟고 바다를 건넌 기적을 떠오르게 합니다.

유다인들은 율법이 정한 바대로 파스카 축제를 거행해 왔습니다. 물을 건넘으로써 노예 이스라엘은 죽고, 하느님 백성 이스라엘로 거듭났기에 민족적 정체성과 자긍심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바로 이 시기에 이르러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올라가십니다. 이번은 아니지만 훗날 다가올 파스카 때에 예수님은 피를 흘려 인류를 정화하고 구원한 어린양의 희생 제사를 바치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겁니다.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요한 2,16).
성전에서 소동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축제 예식에 기대어 부당한 이득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분노를 터뜨리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팔아 장사하는 이들에게 외치신 "내 아버지의 집"이란 말씀에 예수님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습니다. 성전이 이윤 추구의 소란스런 각축장이 되어버린 탓입니다.

성전은 하느님 현존의 장소이고, 진심으로 하느님을 찾는 이들이면 누구나 다가와 마음을 쏟아놓고 기댈 수 있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아버지의 집이어야 합니다. 또한 정화와 성화, 즉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본연의 정체성도 잃지 말아야 하지요.

성전의 거룩하고 진실되고 장엄하며 아름다운 모습이 예수님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분께서 곧 성전이십니다. 걸어다니는 성전, 말씀하시는 성전, 치유하고 용서하고 해방시키는 성전이십니다.

제1독서는 에제키엘 예언서의 유명한 성전 현시 대목입니다.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에제 47,9.12).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만물을 되살리고 생동하게 합니다. 이 생명의 원천은 성전입니다. 성전이신 예수님의 벌어진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과 피(요한 19, 34 참조)가 온 인류와 세상에 생명을 주리라는 예언적 환시입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요한 2,19).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이 말씀으로 당신 생명의 처분권을 유다인들 손에 넘기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맞이하실 파스카를 의미합니다. 허물지 않고는 다시 세울 수 없고, 새로운 생명은 죽음을 건너야 얻으니까요. 이 의미를 유다인들은 못 알아들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요한 2,22) 깨달을 것입니다.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다시 약동하게 될 생명의 기운은 죽음을 거친 뒤에야 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뒤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모든 이를 당신께로 모아들이시고 그들에게 진정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성전은 장소적으로 고정된 아버지의 집에서, 육화하신 예수님에게로 옮아갑니다. 예수님의 파스카를 통하여 진정한 예배는 이 산, 저 산을 찾아다니지 않는, 제도와 절차에 묶이지 않는,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진정한 제사로 건너갈 것입니다.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나는 보았네"(입당송).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성령을 받아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는 우리가 곧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며, 그리스도의 신부로 아름답게 치장한 새 예루살렘입니다.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께서 이 지상 교회 안에서 무엇을 가장 안타까워하실지, 우리 공동체에서 무엇을 가장 슬퍼하실지, 내 안에서 무엇을 가장 치우고 뒤엎고 내쫓고 싶어하실지 바라봅시다. 이 손길은 가장 순결하고 진실되고 아름다운 본래 모습을 되찾아 주시려는 파스카로의 초대이기에, 그 목적은 파괴와 죽음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이 되살림에 목숨을 거셨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우리의 파스카는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