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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바오로) 신부님

~ 부활 제 5주일 (생명주일) / 오상선 신부님 ~

부활 제5주일(생명 주일)(사도6,1-7)(1베드 2,4-9)(요한14,1-12)

 

제1독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았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6,1-7
1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2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아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3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4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5 이 말에 온 공동체가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테파노, 그리고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또 유다교로 개종한 안티오키아 출신 니콜라오스를 뽑아, 6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7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 예루살렘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사제들의 큰 무리도 믿음을 받아들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입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2,4-9
사랑하는 여러분, 4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이십니다. 5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6 그래서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내가 시온에 돌을 놓는다. 선택된 값진 모퉁잇돌이다. 이 돌을 믿는 이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7 그러므로 믿는 여러분에게는 이 돌이 값진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하는 그 돌이며, 8 또한 “차여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걸려 비틀거리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은 정해진 대로,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그 돌에 차여 넘어집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한달이 훌쩍 지나 벌써 부활 제5주일을 맞이했네요. 오늘 독서와 복음에 반복해서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새로움"(new)입니다. 새로운 노래(입당송), 새로운 교회 공동체 구성(제1독서 사도행전), 새 하늘과 새 땅(제2독서 요한묵시록), 새 계명(요한복음)...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모든 피조물을 '새롭게' 하셨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랑의 실천으로 그리스도를 입은 '새' 인간이 되었음을 증거하면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을 기다리는 것이 성령강림대축일을 향해 가는 부활 제5주일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셨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요한 13,31)

인간에게 영광이라면 흔히 출세, 부귀영화, 입신양명 등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라면 말이 달라집니다. 그분께서 이 모든 것을 이미 다 가지고 누리고 계시니,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신"의 영광을 찾을 수 있을까요?

오히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가리켜 "영광"을 이야기하십니다. 인간적 고정관념으로는 어불성설처럼 느껴지지요. 그런데 이렇게 접근하면 어떨까 싶네요. 생명의 주인, 시간의 주인으로서 영원한 생명, 불사불멸을 누리는 "신"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아니 신이 굳이 접근할 필요가 없었던 "고통과 굴욕과 죽음"이라는 영역에까지 들어가신 예수님은, 빛이신 하느님 존재 뒷편의 그늘, 어둠의 절정에까지 침투하심으로써 신의 영역을 확장하신 것이고, 인간의 마지막 원수요 한계인 죽음을 몸소 겪고 부활을 통해 승리하심으로써 진정한 완전성을 쟁취하신 것이라고!

아드님의 온전한 순명은 인류를 위한 구원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하느님께 또한 영광을 드렸고, 하느님께서 죽으셨던 아드님을 친히 일으켜세우심으로써 죽음의 권세까지 지배하시는 하느님의 권능이 드러나게 된 것이지요.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그동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당신의 사랑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받으실 영광에 대해 이야기하신 것은 그저 자랑삼아 하신 말씀이 아니었음은 명백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드러내심으로써, 서로 사랑하라는, 그것도 당신이 사랑한 것처럼 목숨까지 바쳐 사랑하라는 이 새로운 계명을 이해시키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새로운 교회 공동체의 태동 과정이 마치 교과서처럼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사도들은 이제 막 신앙의 길에 들어선 "제자들 마음에 힘을 북돋아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사도 14,22)합니다. 그들 모습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자연스럽게 우러나고 있지요. 그러면서도 좋고 쉽고 편한 꽃길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사도 14,22)한다는 진실을 감추지 않습니다. 또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사도 14,23)합니다. 사랑의 계명에 중심을 둔 교회 공동체에 외적 조직과 제도까지 정비하는 모습이지요.

제2독서인 요한묵시록은 세상의 종말론적 완성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 신부인 교회와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사랑 가득한 혼인 잔치를 관상합니다. 감사하게도, 이제는 눈물도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전 것은 모두 사라져 더 이상 없다고 합니다.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기"(묵시 21,3)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거처."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씀이지요. 과거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나와 광야를 떠돌 때 하느님께서 그들 한가운데서 천막을 옮겨다니며 현존하셨지요. 이후 성전 안 지성소에 머무르시다가, 육화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제로 사람들 사이에 함께 숨쉬고 울고 웃으며 사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 떠나실 때가 되자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니"(요한 13,33) 너희가 서로 사랑함으로써 내 현존을 이어달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사도행전에 언급된 사도들의 활동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고요.

오늘날, 하느님께서는 말씀과 예수님의 성체 성혈로 이 세상 안에서 당신의 현존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아울러 우리! 부족하기 짝이 없고 죄인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기꺼이 당신의 처소를 지으시고 누추한 곳에 머무르시면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주님께서 현존하십니다!

이상적이고 완전한 하느님 나라인 "새 하늘 새 땅"이 멀게만 느껴지는 오늘의 현실을 살면서도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는 하느님의 힘찬 말씀에 희망을 가져 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고통과 죽음이라는 "이전 것들이" 사라졌음을 이미 체험한 인류에게 다시 오실 예수님과 함께 완성될 천상 예루살렘의 도래는 기대 가능한 실재가 되었으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의 할 일이란, 이 세상에서 주님 현존의 도구로서의 소명을 묵묵히 이어가는 것입니다. 드러나건 드러나지 않건, 성공을 통해서건 실패를 통해서건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 각자가 제2의 그리스도로 존재하는 겁니다. 그 조건, 비결은 우리게 주신 새 계명 "서로 사랑하여라"에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서로 사랑하면서 주님께 "새로운 노래"(입당송)를 부릅시다. 그 기적들을 일으키시는 분은 주님이시니까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