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제5주간 수요일 (사도15,1-6) (요한15,1-8) |
제1독서
<할례 문제 때문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5,1-6
그 무렵 1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 2 그리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 그 문제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3 이렇게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파견된 그들은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거쳐 가면서, 다른 민족들이 하느님께 돌아선 이야기를 해 주어 모든 형제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4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교회와 사도들과 원로들의 영접을 받고,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보고하였다.
5 그런데 바리사이파에 속하였다가 믿게 된 사람 몇이 나서서,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또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 사도들과 원로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모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이방인 지역을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바오로와 바르나바에게 두 가지 큰 장벽이 있었는데, 하나는 '유다인들의 시기 질투'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어중간한 그리스도인들의 어중띤 주장'이었습니다.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사도 15,1)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또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 합니다."(사도 15,5)
이제 막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이 태동하는 시기다 보니 모세, 할례, 계약 등 이스라엘 민족의 뿌리가 되는 요소들 안에서 '계승해야 할 부분'과 '단절하고 새로워져야 할 부분'에 대해 혼선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자연스럽고 건강한 반응일 것입니다. 새로움은 부정과 단절, 선택과 계승, 변형과 발전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니까요.
이미 답을 아는 우리는 성경과 교리를 통해 저 두 주장에 관한 조치를 대략 예상할 수 있지만, 당시 이 문제에 직면한 이들에게는 적잖은 고민이 되었을 겁니다. 어쩌면 사도행전 저자는 의도적으로 이 주장들을 눈에 띄게 직접 인용해 앞으로 펼쳐질 새 계약의 내용과 대비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사도들의 움직임을 관상합니다. 아직 교회의 조직과 제도가 꼴을 갖추기 전입니다. 저마다 제각기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접목해서 의견을 내는데 함부로 따를 수도, 또 함부로 묵살해 버릴 수도 없습니다. 모두가 어리고 약한 상태이고 성령께서 누구에게 영감을 주시는지, 누구를 통해 열매를 맺으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 때문에 ...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사도 15,2)
"사도들과 원로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모였다."(사도 15,6)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겸손히" 인정하고 하느님의 뜻을 "함께" 찾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성전이 있는 곳이고, 요한묵시록이 말하는 "천상 예루살렘"은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향해 모여 오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이 교회가 곧 혼인잔치를 위해 단장한 그리스도의 신부이고,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신랑이시지요.
그래서 독서와 이어지는 화답송에서는 "주님의 집"과 "예루살렘"을 노래하고 있지요. 그런데 주님의 집이 있는 곳, 예루살렘은 이제 지리적 · 공간적 예루살렘을 넘어섭니다. "그곳"은 주님의 거처이고 우리의 본향이며 사랑의 자리입니다. "말씀"과 "성체"와 "이웃"을 통해 현존하시는 주님을 "머리"로 하는 "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지체입니다.
자, 이제 복음으로 갑니다. 사도행전과 연결되어서 그런지 오늘 이 대목의 예수님 말씀은 개인보다 공동체를 향하는 고백으로 들리는군요.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 교회와 우리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이고 아버지는 이 모두를 창조하고 키우고 보살피는 분이십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요한 15,3) 사실 교회와 우리 공동체에 얼마나 죄와 어둠과 흠과 결함이 많습니까! 악도 버젓이 판을 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멀리 갈 것 없이, 남 손가락질 할 것 없이 교회 구성원이고 또 교회인 우리 자신만 봐도 변명의 여지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늘 죄인들의 집단인 교회가 우리 공동체가 감사하게도 당신의 "말씀"으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성교회를, 우리 각 영혼을 말씀과 빛으로, 물과 성령으로, 당신 피와 사랑으로 정화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성체를 모시기 전에 이렇게 외칩니다. "주님이 부활하시어 우리를 비추셨네. 당신 피로 우리를 속량하셨네. 알렐루야."(영성체송)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요한 15,4)
교회가, 우리 공동체가, 우리 영혼이 주님께서 거처하시는 곳이 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쉽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생각과 기억과 의지와 행동이 주님 인격에, 말씀에, 가르침에, 분위기에, 마음에, 행위에 머무를 때 그분께서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머무르고 계신 겁니다. 서로가 서로 안에 머무른다는 건 일치의 신비입니다. 나와 네가 서로 물들고 하나로 녹아 떼어낼 수 없는 상태의 행복입니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교회, 공동체, 주님을 사랑하는 영혼은 신랑이신 그리스도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교회와 영혼을 움직이는 원동력인 사랑을 제외한 채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청하여라."(요한 15,7) 교회, 공동체, 영혼 안에 말씀이 각인되어 흐르고 있다면, 말씀이 원하시는 바와 이질적인 것은 원할 수 없겠지요. 아예 떠오르지도 바라게 되지도 않을 겁니다. 내면에 간직한 말씀이 원하는 것을 나도 원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청하니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요.
그래서 주님과 그분 말씀을 품은 교회, 공동체, 영혼이 바치는 기도는 소중합니다. 주님 안에 머무르고 주님께서 머무르시니 주님의 생각을 하고 주님의 사랑을 하며 주님의 꿈을 꾸기 때문입니다. 그의 바람이 곧 주님의 바람이니, 창조하고 가꾸고 기르시는 아버지께서 외면하실 리 없겠지요.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예수님과 누리는 이 머무름, 일치, 사랑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요한 16,8) 오늘 부족한 죄인인 교회, 공동체, 우리 영혼이 바치는 모든 것을 통해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길 빕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피로 이루신 용서와 정화를 통해, 모든 피조물이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신부로 아름답게 단장한, 천상 예루살렘인 우리를 더 맑고 밝고 영롱하게 비출 것입니다. 아멘.
'오상선(바오로) 신부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부활 제 6주간 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3.05.16 |
---|---|
~ 부활 제 5주간 토요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3.05.13 |
~ 부활 제 5주간 화요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3.05.09 |
~ 부활 제 5주일 (생명주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3.05.07 |
~ 부활 제 4주간 토요일 / 오상선 신부님 ~ (0) | 2023.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