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 자헌 기념 (마태 12,46-50)
제1독서
<딸 시온아, 즐거워하여라. 내가 이제 가서 머무르리라.>
▥ 즈카르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14-17
14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5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그때에 너는 만군의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 보내셨음을 알게 되리라. 16 주님께서는 이 거룩한 땅에서 유다를 당신 몫으로 삼으시고,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시리라. 17 모든 인간은 주님 앞에서 조용히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6-50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자발적인 내어줌
푸르른 생명력을 뿜어대던 잎들이 형형색색 물들어 아름다움을 회상하게 해주더니 어느새 낙엽되어 삶과 죽음의 길목에서 삶의 근원을 보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오늘은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실 때 이를 충만히 채워 주신 그 성령의 감도로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이다. 전승에 따르면 성모님은 세 살 때에 성전에 봉헌되셨다고 한다.
유대인들 가운데는 성별이나 연령에 상관없이 평생 또는 일정 기간 성전에서 다양한 일에 봉사하며 사는 이른바 ‘나자레오’들이 있었다. 이들은 하느님 공경을 배우고 공동으로 성경을 공부하며 기도했지만 남녀가 함께 남녀가 숙식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독신의 의무가 없어 언제든 성전 봉사를 마치고 결혼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자녀를 가지려고 하느님께 서원한 경우나, 부모가 자녀에게 하느님을 공경하는 법을 가르치고 굳은 신앙을 심어주기 위해서, 또는 성전 일을 돕기 위해서 이런 봉헌된 삶을 살았다.
오늘 다음 두 가지를 깊이 되새겨 보면 좋을 것 같다. 먼저 성모님의 자헌(自獻)에서 생각해 볼 점은 ‘자발성'이다. 어떤 이들은 매우 분주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봉사하고 성경공부 하면서도 얼굴이 굳어 있다. 그 이유는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 못해서 하고, 의무감이나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겪으시고 고난의 잔을 마시고 십자가상 죽음을 맞는 그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하셨다. 그분은 말과 행동으로 전 생애 동안 하느님 뜻에 스스로 순명하셨다. 바오로 6세 교종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의 성소는 기쁨이다. 성 프란치스코도 우울함은 바빌론의 악과도 같은 것이라 하며 기쁘게 살 것을 권고하였다. 이 기쁨은 무엇을 하든 하느님께 기꺼이 응답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헌신하고 희생하며 사랑으로 견딜 때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봉헌의 의미이다. ‘바친다’는 것은 자신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내놓고 시간을 내놓고 마음을 내놓는 것이다. 이것이 생명의 이치이고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이 가르쳐주는 사랑과 생명의 진리이다. 내놓은 것은 늘 누군가를 위한 이타적인 것이기에 예수님의 죽음에 이르는 헌신에 일치하는 것이다. 이런 봉헌을 마음을 다해 기쁘게 할 때 그 봉헌의 정점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축성해주신다.
또 하느님께서 세례와 서약, 서품 등을 통해 축성해주시는 것은 그런 봉헌을 충만히 살라는 초대이기도 하다. 봉헌 없는 축성, 희생 없는 축성과 봉헌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신앙인의 봉헌은 전 존재의 봉헌이어야 하며, 온전한 봉헌을 할 때 사랑이신 하느님과 일치하게 된다. 따라서 봉헌은 사랑의 결정체이자 아름다운 기도이다. 나는 어떤 봉헌을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되새겨 그 말씀의 힘으로 일생 동안 충만한 봉헌의 삶을 사셨다. 그분은 말씀이 되어 오신 구세주를 사랑으로 품으시고, 이집트 피난의 고통을 받아들이셨으며, 나자렛 가난하고 소박한 생활로 아드님을 돌보셨으며, 아드님의 갈릴래아 여정에 늘 말없이 동반하셨고 죽음에 이르는 수난의 여정에 끝까지 함께 하셨다. 그분의 삶 자체가 살아있는 말씀으로 되살아났다.
그분은 말씀을 실행하여 예수님의 참 어머니가 되셨으며(마태 12,50)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셨다. 성모님은 ‘항구함’, ‘함께함’, ‘견딤과 받아들임’, ‘말씀에 자신을 내맡김’ 등을 통하여 인류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수님의 전 여정에 자신을 기꺼이 바치셨다. 나의 일상은 항구하게 이런 자헌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프란치스코 성인은 “하늘에 계신 지극히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당신을 뽑으시어,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시고 사랑하시는 아드님과 보호자이신 성령과 함께 당신을 축성하셨나이다. 당신 안에는 온갖 은총과 온갖 선이 가득하셨으며 지금도 가득하시나이다.”(동정녀 인사2-3절) 라고 하며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되신 성모님을 기린다. 오늘 나의 삶과 시간과 만남이 하느님께 봉헌되어 은총과 선이 가득한 축성의 날로 기억되도록 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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