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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대림 1주간 월요일 / 조재형 신부님 ~

 대림 제 1주간 월요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현대사회를 이끌어가는 ‘축’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군인도 있습니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입법부도 있습니다. 법과 정의를 판단하는 사법부도 있습니다. 법과 제도를 실행하는 행정부도 있습니다. 세금을 내고 권리와 책임을 다하는 국민이 있습니다. 저는 현대사회를 이끌어가는 ‘축’은 ‘신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은행에 계좌를 열고, 돈을 맡길 수 있는 건 은행이 안전하다는 신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 걱정 없이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건 식당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신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찰에게 총을 맡길 수 있는 건 경찰이 그 총으로 우리를 보호할 수 있다는 신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용이 잘 지켜지는 사회는 국가의 경쟁력이 높은 건강한 사회입니다. 신용이 무너지는 사회는 부정과 부패가 넘쳐나는 병든 사회입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국가를 세우고,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신용’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인류의 문명과 문화를 이끌어 왔던 철학의 근본이 이성이라면, 인류의 도덕과 윤리를 이끌어왔던 종교의 근본은 ‘믿음’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이스라엘에서 예언자는 크게 4가지를 선포하였습니다. 첫째는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과 역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둘째는 지금 겪는 고난과 유배는 피할 수 없는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를 징벌의 도구로 사용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셋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한다면, 다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유배에서 돌아오게 할 거라고 선포했습니다. 페르시아 왕 키루스는 이스라엘 백성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했는데, 이 또한 하느님의 뜻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넷째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선포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메시아, 구세주가 올 거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렇게 구약의 문을 닫고, 신약의 문을 연 예언자가 있으니 ‘세례자 요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대림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어제 예수님께서는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깨어 있음의 첫 번째 조건은 ‘믿음’의 눈을 뜨는 겁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본 예수님은 그저 눈으로 보았던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메시아’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던 고향 사람들에게는 표징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능력, 업적, 지식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물 위를 걷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물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리 믿음이 없느냐!’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면, 고통의 바다에서도 길을 잃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병자를 고쳐주지 못하고,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을 때도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와 같은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토마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참으로 복되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강한 사람은 비록 이방인지라도, 로마의 군인일지라도, 죄를 지었을지라도 칭찬하셨습니다. 하혈하는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고, 고쳐주셨습니다. 이방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고, 여인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마르타의 믿음을 칭찬하셨고, 죽었던 라자로를 살려 주셨습니다. 오늘 백인대장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믿음의 눈을 크게 뜨고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