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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 이수철 신부님 ~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하느님은 사랑이시다(God is love)”

<서로 사랑합시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영어로 쓰니, “God is love” 한 눈에 들어옵니다. 하느님에 대한 정의입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사랑해서 사람이요 만병통치약이 사랑이고 만병의 근원이 사랑 결핍입니다.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인간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도, 사랑뿐입니다. 가장 많이 말하면서 가장 모르는 것이 사랑입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사랑에 위반되는 모든 행위가 죄입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는 소극적 노력보다는 사랑하려는 적극적 노력이 죄에 대한 최고의 처방입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에는 우리 모두 영원한 초보자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되는 평생 공부가 사랑이요, 우리는 졸업이 없는, 죽어야 졸업인 사랑의 인생 학교에 재학중인 평생학생입니다. 하루하루가 사랑을 배워가는 사랑의 학교입니다.

 

 

 

죽으면 사랑도 못합니다. 살아있을 때 사랑이요, 사랑하라 주어지는 인생입니다. 죽음에 직면했을 때 가장 후회되는 것이 사랑 못했던 것이요, 하느님 앞에 가서는 평생 사랑으로 심판 받을 것입니다. 평생 아프게 했던 남편의 임종전 고백에 말끔히 치유되었다는 어느 자매의 고백이 생생합니다.

 

 

 

1.미안하다.

2.고맙다.

3.사랑한다.

 

 

 

마지막 이런 임종어를 주님께 고백할 수 있다면 무조건 구원일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 요한이 ‘사랑의 대가’답게 명쾌하게 사랑을 설명합니다. 무려 사랑이란 말이 10회 나옵니다. 사랑없이는 결코 사람이 허무와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지녔어도 사랑이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없이는 하느님도, 인간도 해명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신비, 인간의 신비는 그대로 사랑의 신비입니다. 사랑은 모든 신비의 열쇠입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사도 요한을 통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는 사랑도 못합니다. 사랑은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입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선물이 이웃이요 공동체입니다. 서로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라 주어진 공동체입니다. 혼자서는 사랑도, 구원도 없습니다. 공동체내에서 서로 사랑할 때 서로가 구원이요, 서로가 자존감 높은 삶에, 정체성 또렷한 삶입니다. 수도 공동체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잘 체험할 수 있는 두 중심 시간은 성당에서의 공동미사시간이요, 식당에서의 공동식사시간일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지름길은 사랑하는 일뿐입니다. 사랑은 추상 명사가 아니라 구체적 동사입니다. 사랑할수록 하느님께 가까워지고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은 능력입니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사람마다 사랑의 능력은, 깊이는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니 참사람이 되는 길은 사랑 실천을 통해 하느님을 닮아가는 길뿐입니다. 이 사랑이 아니곤 도대체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길도, 사람이 되는 길도 없습니다. 바로 우리가 평생 보고 배울 사랑의 영원한 롤모델은 예수님뿐입니다. 요한이 설명이 명쾌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 사랑의 화신이 오늘 복음의 착한목자 예수님입니다. 사도들이 전교활동후 돌아와 성과를 보고하자 “너희는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배려하는 주님의 사랑이요, 막상 외딴곳에 도착했을 때 기다리던 목자 없는 양들같은 군중을 보자 예수님은 가엾은 마음에 많은 것을 가르치십니다. 새삼 예수님의 분별의 사랑, 분별의 지혜가 고맙고 감동적입니다. 당신과 제자들의 휴식보다는 군중의 필요를 우선 충족시킨 주님이십니다.

 

 

 

흡사 오늘 복음의 구조가 그대로 사랑의 성체성사 미사를 닮았습니다. 앞서 가르치시는 부분은 말씀전례에 해당되고 이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는 장면은 그대로 성찬전례에 해당됩니다. 하느님 사랑의 절정의 계시가 미사시간이요, 미사전례의 주례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성체성사의 기적은 사랑의 기적, 나눔의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정성을 다해 모두를 봉헌하니 하느님도 감동하셨고 군중도 감동하여 가진 것을 다 나누니, 빵을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5천명이요,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것도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합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사랑의 성체성사를 가리킵니다. 없어서 굶주린 것이 아니라 나누지 못해 굶주림이요, 이것은 하느님 탓이 아니라 순전히 사람 탓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깨닫는 진리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주님의 이 거룩한 사랑의 미사 은총을 통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형제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3,1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