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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 정인준 신부님 ~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제1독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11-18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에 우리가 심판 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았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45-52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 45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46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47 저녁이 되었을 때,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48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4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50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51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52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산행을 하다보면 때로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겨울해는 짧아서 하산을 잘못 어물쩡거리다 가는 사방은 금방 컴컴하고 주위는
적막감으로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더듬더음 길을 내려오다 보면 두려움이 슬며시 드는 것입니다.
사람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도 하지만은 갑자기 상황이 바뀌면 거기에서도
불안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뭍에 계시는 동안 호수 건너편 벳사이다로 건너가려고 하지만
맞바람 때문에 애써 노를 저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그들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바다를 걸어 제자들에게 다가 오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귀신을 보는 줄 알고 비명을 지릅니다.


그것이 그럴 것이 누구도 물을 걸어서 건너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막상 그 상황이라면 놀라지 않을까요?
복음은 놀라는 정도를 비명을 질렀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부들이기 때문에 물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풍을 만나서 애를 쓰는 것도 익숙했을 것이고,
또 역으로 그 상황이 위태롭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물길 때문에 고전을 하는 상황에 주님께서 그것도 걸오 오셨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잔잔한 물도 아니고... 주님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고 안심하는 표현이 아니고 복음은
‘넋을 잃었다.’는 의미로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자들처럼 주님을 잘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언제든 도와주시고 함께하신다고 배우고 또 믿으려 합니다.


그런데 일상생활의 역풍이나 파도를 만나면 주님이고 뭐고 그 상황에서 애쓰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님이 계시기나 한거야?’라는 질문이 나 자신을
엄습하기도 합니다.


그 만큼 사람의 한계가 있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걸어오시는 모습, 걱정이 되어서
보러 오시는 사랑은 잊은 채, 당장 자신이 겪는 고통, 혼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만
나를 휘감는 것입니다.


그 모습은 이스라엘의 왕들에게서도 나타납니다.
예언자를 통한 하느님의 당부와 희망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당장 위협하는 적들 앞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비명을 지르며 넋이 빠진 모습에 익숙하시고 사랑으로 감싸 주십니다.
‘두려워 하지 마라!’라는 주님의 말씀은 사랑이 담겨 있고 위로가 담겨 있습니다.


어쩔 줄 모르고 주님까지도 잊은 채 허둥거리는 자신을 주님께서는 아시고 위로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불완전하고 어리석고 때로는 옹졸한 자신을
감싸 주시고 당신 사랑의 마음에 초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잊지 못합니다. 세상은 나에게서 실망하고, 비난하고 흉보며
쑤근대지만, 주님만큼은 사랑으로 감싸주고 내가 다시 일어 날 수 있도록 버팀이 되어 주십니다.


신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며 극도의 실망과 고통을 겪으셨지만 그 버팀목으로 우리가
실망하지 않도록, 용기를 갖도록,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고 일으켜 주십니다.
주님은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의 목자이시며 비명을 지르는 이들의 위로이십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는 양처럼 오늘도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그 분만을 따릅시다.

-정인준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