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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 이수철 신부님 ~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참나의 발견인 겸손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시편149,4)

 

 

 

가장 쉬운 것이 남 판단하는 것이요, 가장 힘든 것이 자기를 아는 일입니다. 자기를 아는 겸손한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새롭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나를 깨닫는 과정은 나를 아는데에서 시작한다. 그 끝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다산>

“지혜로운 자는 자신을 알고 어진 자는 자신을 사랑한다.”<순자>

 

 

 

자신을 알아서 사랑하는 자가 지혜롭고 겸손한 자입니다. 지혜와 겸손은 함께 갑니다. 이런 이들이 진정 매력적인 사람들이요 존재 자체가 복음 선포입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주인공 세례자 요한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흡사 예수님의 배경처럼 생각됩니다. 자기는 사라지고 예수님을 환히 드러내는 배경의 겸손입니다. 아주 예전에 써놨던 “소망”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커져서

텅 빈 공(空)이 되고

작아져

흔적없는 무(無)가 되어 살 수는 없을까

 

 

 

물러나

하늘 배경이 되고

내려와

땅 마당이 되어 살 수는 없을까

 

 

 

참 아름답고

향기로운

무아(無我)의 삶이겠다

진아(眞我)의 삶이겠다”<1999.12. >

 

 

 

이런 경지야 말로 겸손의 절정이자 극치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하고 세례자 요한이 그러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이요, 세례자 요한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예수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겸손한 인품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세례준다는 소식을 알렸을 때 요한의 겸손한 반응이 감동적입니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흡사 두분이 경쟁관계에 있는 듯, 질투심이 날만도 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의 위기의식을 반영합니다. 이어지는 세례자 요한의 반응이 그의 겸손과 지혜를 반영합니다. 마음이 투명하기가 가을 하늘같습니다. 전혀 질투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예수님의 존재가 하늘 섭리의 결과임을 깨닫는 지혜로운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없는 세례자 요한은 상상할 수 없듯이, 우리 또한 그러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세례자 요한의 신원이듯 우리 믿는 이들의 신원입니다. 이어지는 세례자 요한이 겸손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충만하다. 그분의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신랑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요, 신부는 우리 믿는 이들이요, 신랑의 친구는 세례자 요한입니다. 신랑 예수님의 기쁨은 그대로 세례자 요한의 기쁨입니다. 겸손의 기쁨, 겸손의 아름다움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배경처럼 자기가 전혀없는 세례자 요한의 순수한 마음, 아름다운 겸손이 정말 감동적입니다.

 

 

 

세례자 요한이야 말로 겸손의 모범입니다. 겸손의 여정은 날로 그분 예수님은 커지시고 나는 날로 작아지는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날로 작아질 때 나는 “없어지는(lose)” 것이 아니라, 그분 안에서 참나를 “발견하게(find)” 됩니다. 예수님은 날로 커지고 나는 날로 작아질수록 참나의 실현이자 구원입니다. 자기를 잃음으로 자기를 얻는 역설의 진리입니다.

 

 

 

바로 이런 이들이 요한 사도가 말하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이요 죄를 짓지 않습니다. 이런 이들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청하면 하느님께서는 이런 겸손한 이들의 청을 들어주시며,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이들을 지켜 주시어 악마가 손을 대지 못합니다.

 

 

 

제1독서 요한1서, 주님의 애제자 사도 요한 역시 겸손한 분입니다. 성인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겸손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작아진 겸손한 사람, 사도 요한의 예수님께 대한 고백입니다. 얼마나 예수님께 정통한 요한인지 예수님을 사랑할수록 예수님을 알고 참나를 아는 겸손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사도 요한의 참 멋지고 아름답고 겸손한 고백입니다. 세례자 요한이나 사도 요한이나 막상막하의 겸손입니다. 성인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겸손입니다. 하느님께 태어나신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참되신 분 하느님 안에서 있을 때 참나의 상실이 아니라 참나의 실현이요 발견이요 구원입니다. 요한 1서를 멋지게 장식하는 사도 요한의 마지막 말씀이 평생화두로 명심할 말씀입니다.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날마다 주님을 모시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우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참된 겸손의 영원한 생명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네.”(요한1,1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