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1주간 월요일 / 송영진 신부님 ~

<연중 제1주간 월요일 강론>(2025. 1. 13. 월)(마르 1,14-20)


복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4-20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날마다 응답하는 사람입니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마르 1,14-20).”


1) “때가 차서”는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었다.”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종말의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회개’를 해야 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회개’와 ‘믿음’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일입니다.
만일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회개는 안 하려고 하면,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회개한다고 말하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가르침들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 회개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말씀이
‘복음’(기쁜 소식)인 것은, ‘구원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원에 대해서 관심도 없는 사람들, 또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들어도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는 ‘복음’은 곧 ‘심판 경고’가 됩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되지만,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무서운 소식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하신 말씀을 보면
그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마태 10,7.14).”


2)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복음서에서 ‘제자들’이라는 말이 ‘신자들’이라는 뜻으로
사용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 가운데에서 따로 열두 명을 뽑아서
사도로 삼으셨습니다(루카 6,13).
그렇게 열두 명을 뽑아서 ‘사도단’이라는 조직을
만드신 것은, 사실은 당신의 ‘교회’를 만드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만드신 이유는, 당신이 승천하신 뒤에도
신앙인들이 당신의 일을 계속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기도
하고, 구원 사업은 인간들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스스로 노력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나라’이고, ‘나의 나라’이기 때문에,
신앙인이 그 나라 건설에 동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3) “나를 따라오너라.”는 표현으로는 “나의 제자가
되어라.”인데, 신앙인이란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그대로 뒤따라가는 사람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라는 말씀은,
나중에 사도로 뽑으실 사람들에게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너희는 지금까지는 먹고사는 일이나
신경 쓰면서 물고기를 잡는 인생을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사도의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입니다.
<사도들이 첫 번째로 낚아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이 구원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어야
다른 사람들을 그 길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낚는다.’는 말은, 물속에 있는 사람을(멸망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을) 물 밖으로(구원의 길로)
끌어낸다는(인도한다는) 뜻입니다.
‘낚는다.’는 말은 낚싯줄로 하나씩 잡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물로 잡는 것과 낚싯줄로 잡는 것을
구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마태 13,47).”


4) 신앙인은 모두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제자들입니다.
그 응답의 첫 번째 목표는 바로 ‘나 자신의 구원’입니다.
내가 살기를 바라니까, 즉 나 자신이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간절하게 희망하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는 일을 하는 것도
그 응답에 포함되는 일입니다.
“나만 구원받으면 그만이다.” 같은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사랑 실천 없이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는 일은,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할 때에 다음 말씀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루카 6,39.41-42).”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