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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1주간 화요일 / 조재형 신부님 ~



제1독서
<하느님께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2,5-12
5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곧 앞으로 올 세상을 천사들의 지배 아래 두신 것이 아닙니다.
6 어떤 이가 어디에선가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그를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를 돌보아 주십니까?
7 천사들보다 잠깐 낮추셨다가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시고
8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만물을 그의 지배 아래 두시면서,
그 아래 들지 않는 것은 하나도 남겨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보기에는
만물이 아직도 그의 지배 아래 들지 않았습니다.
9 그러나 우리는 “천사들보다 잠깐 낮아지셨다가”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10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이러한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시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11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12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당신 이름을 제 형제들에게 전하고
모임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ㄴ-28
카파르나움에서,
21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24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신호등’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이제야 목적지를 정했지만/ 가려 한 날 막아서네./ 난 갈 길이 먼데 새빨간 얼굴로 화를 냈던/ 친구가 생각나네./ 이미 난 발걸음을 떼었지만/ 가려 한 날 재촉하네./ 걷기도 힘든데/ 새파랗게 겁에 질려 도망간/ 친구가 뇌에 맴도네./ 건반처럼 생긴 도로 위/ 수많은 동그라미 모두가/ 멈췄다 굴렀다. 말은 잘 들어/ 그건 나도 문제가 아냐/ 붉은색 푸른색 그사이 3초 그 짧은 시간/ 노란색 빛을 내는/ 저기 저 신호등이/ 내 머릿속을 텅 비워버려/ 내가 빠른지도/ 느린지도 모르겠어./ 그저 눈앞이 샛노랄 뿐이야.” 


경쾌한 멜로디가 좋았던 노래입니다.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신호등’이 필요해졌습니다. 신호등이 없으면 교통의 흐름이 막히기도 하고, 무엇보다 교통사고의 위험이 더 커집니다. 이런 신호등도 가끔은 ‘수신호’로 바뀔 때가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크게 났을 때는 경찰이 수신호로 차량 통행을 유도합니다. 대통령이나 외교 사절이 이동할 때도 수신호로 차량을 유도합니다. 수학능력 시험처럼 학생들에게 아주 중요한 시험이 있는 날도, 학생들의 이동 차량을 위해 수신호로 차량 통행을 유도합니다.
 
신앙 안에서 ‘신호등’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율법과 계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었습니다. 십계명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정립하고,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가 가야 할 삶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빨간불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느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겁니다.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고,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고, 부정한 행위를 하지 말고,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고, 도둑질 하지 말고, 살인하지 말라는 겁니다. 십계명의 파란불은 하느님을 섬기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겁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계명 이외에도 613개의 율법이 있었습니다. 이 율법은 신호등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께 인도하고, 공동체가 하느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십계명과 613개의 율법은 지킬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삶을 구속하는 고삐와 같았습니다. 지킬 수 없는 사람은 죄인처럼 지내야 했습니다. 교황님께서도 교회법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을 단죄하기보다는 교회가 보듬어 안을 수 있도록 배려하자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이유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그것을 이렇게 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신호등과 수신호는 모두 사람을 위해 있는 겁니다. 다만 수신호가 필요한 때가 있기에 수신호를 통해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겁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은 하느님의 ‘수신호’입니다. 


계명과 율법만 지키기에는 세상이 너무 타락했습니다. 계명과 율법만 지키기에는 인간의 나약함이 너무 컸습니다. 세상에는 계명과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많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계명과 새로운 질서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새로운 권위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권위가 계명과 율법을 뛰어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함께 지내던 주교님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시라면 이럴 때 어떤 결정을 내리셨을까?” 주교님 선택의 기준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사제직의 권위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예수님을 따름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느님께 대한 순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치워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예수님의 권위는 십자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겸손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제직이 순명을 만나면, 사제직이 십자가를 만나면, 사제직이 겸손을 만나면 주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권위가 생겨납니다. 예수님은 전 생애를 걸쳐서 봉사와 희생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기까지 순명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새로운 권위였습니다. 그 권위 위에서 부활의 꽃이 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조재형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