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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1주간 목요일 / 정인준 신부님 ~

1월 16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


제1독서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서로 격려하십시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3,7-14
형제 여러분, 7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8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 반항하던 때처럼. 9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며 시험하였다. 10 사십 년 동안 그리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세대에게 화가 나 말하였다. ‘언제나 마음이 빗나간 자들, 그들은 내 길을 깨닫지 못하였다.’ 11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2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13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14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료가 된 사람들입니다. 처음의 결심을 끝까지 굳건히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나”


가끔씩 교우분들 중에 ‘신부님과 가깝다는 분들은 하나같이 가난한 이들 뿐이네요.’라고 
놀립니다. 그러면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주님께서도 그러신데요.’


본당에 있을 때나 교구청에 있을 때, 주위 사람들은 저를 놀립니다.
‘신부님은 아무개의 애인이라고 하네요.’ 그러면 멋쩍은 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주님을 닮으려나봐요.’


 본당에 있을 때 소위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은 주임 신부가 미사를 할 때만
참여합니다. 그 사람은 공소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데 나이가 많이 들었는데도 항상
빨간 옷을 즐겨 입고 입술에는 왜 그렇게 짙은 빨강색을 칠하는지...


그런데 그분이 한번은 보좌신부가 봉헌하는 미사에 왔다가 성체를 모시는 것을
거부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너무 무안했는지, ‘나 집에 가서 떡해 먹을꺼야!’
라며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젊은 신부에게 ‘그래도 먼 공소에서 왔으니 그냥 성체를 모시게
하면 안될까?’ 상의했다가 되레 이론도 원칙도 없는 신부가 되고 말았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그 후에 ‘빨간 아가씨’는 본당신부가 떠날 때까지 한결같이 본당신부 차례의 미사를
기다리고 있다가 성체를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교구청에 있을 때, 시골의 한 본당의 노총각이 교구청에 틈만 나면 찾아 왔습니다.
교구청 식구들은 그가 나타나면, ‘신부님 애인’하며 안내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식구들마저, 심지어는 그곳 본당신부도 골치아파하는 그야말로
‘미친’이라는 범주에 넣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늘 부끄러운 듯 사무실에 와서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신부 앞에서 밀렸던
이야기를 하다가 바쁜가 싶은 눈치면 얼른 일어나 ‘다음에 또 올께요.’말을 남기고
약속이나 한듯 떠났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바뀐 주소로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의 주소를 적지 않았지만 금새 그 노총각인 줄 알았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감히 주님과 비교할 수도 없지만 주님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바로 주님께서 소외된 이들의 진정한 ‘벗’이라는 사실입니다.


심지어는 혐오스럽고 냄새나는 나병 환자가 무릎을 끓고 애원하는 것을 주님께서는
외면하거 피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미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르 1,41)
얼마나 고맙고 정다운 말씀입니까!“


히브리 서간 저자는 시편 95,8을 이렇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히브 3,7-8)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므리바와 마싸에서 하느님께 대들던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의
사건을 ‘오늘’이라는 시점에서 회상하며 다시 희브리 서간 저자가 교우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늘은 늘 함께 합니다. 그런데 어제에 매이고 또 내일로 미루기 때문에
해야할 복음의 과제가 현재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그러한 나 자신을 깨닫게 해 주고 오늘 내가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합니다.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주님처럼 오늘 내가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요.
자칫 잘못 하면 또 미루거나 지나치는 또 어제나 내일의 내가 되겠지요?

-정인준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