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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1주간 토요일 / 송영진 신부님 ~

<연중 제1주간 토요일 강론>(2025. 1. 18. 토)(마르 2,13-17)


복음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17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5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앞에서 똑같은 죄인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3-17)”


1) ‘알패오의 아들 레위’는 ‘마태오 사도’입니다(마태 9,9).
예수님께서 마태오를 사도로 뽑으신 것은,
세리였기 때문이 아니라, 또는 죄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도의 자격’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뽑으실 때
그들의 과거나 직업 같은 것은 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오를 사도로 뽑으신 일에 대해서,
죄인을 사도로 뽑으셨다고 표현하거나 ‘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뽑으셨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 당시의 사회적인
편견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옳지 않은 일이고,
‘세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뽑으셨다고
표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옳습니다.
당시의 세리들이 사회적으로 죄인 취급을 받았다고 해서
오늘날의 우리까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직업만 보면서 모든 세리들이 다 도둑이었고,
죄인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나쁜 편견입니다.
세리들 가운데에는 죄인이 아닌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꾸짖으신 말씀이 많이 있지만, 모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전부 다 위선자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타나엘’은 율법학자였는데, 예수님께서는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라고 그를 칭찬하셨습니다(요한 1,47).
또 바오로 사도는 바리사이였는데,
우리는 그가 위선자가 아니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처럼 세리들이 전부 다 죄인이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나를 따라라.”는, “나의 제자가 되어라.”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마태오를 보자마자 부르신 것은
아닐 것이고, 그를 계속 눈여겨보시다가
적당한 때가 되었을 때 부르셨을 것입니다.
마태오 사도 입장에서 생각하면, 어부 출신 사도들처럼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는 과정이 먼저 있었을 것이고,
제자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또 부르심을 기다리면서,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분의 부르심에, 또는 믿지도 않는 분의
부르심에, 준비되어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응답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3)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식사를, 루카복음서 저자는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라고 기록했습니다(루카 5,29).
마태오 사도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직업을 버렸을
텐데, 과거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면서, 자기를 불러 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리기 위해서, 또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고 잔치를 베풀었을 것입니다.
그 잔치에 참석한 세리들 가운데에는 ‘죄인들’도 있었을
것이고, ‘죄인이었지만 회개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15절의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다.” 라는 말은,
세리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었고,
회개했음을 나타냅니다.
<진심으로 회개했다면 그들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리들 같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고
예수님을 비난하는 율법학자들의 말은
직업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못한 ‘부당한 비난’입니다.


4)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라는 말씀은, “나는 병든 이들과
죄인들을 구원하려고 왔다.” 라는 뜻이기도 하고,
“나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왔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건강한 이들과 병든 이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의인과 죄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가 ‘병든 이들’이고, ‘죄인들’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신 메시아입니다.
‘모든 사람’이 전부 다 예수님의 구원이 필요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특정 계층 사람들만 만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들도 만나셨고, 이방인들도 만나셨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도 만나셨습니다.
가난한 이들도 만나셨고, 부유한 자들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 말씀에는 “너희는 건강하다고 자처하지만
너희도 ‘병든 이들’이다. 너희는 의인이라고
자처하지만 너희도 죄인들이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회개와 구원이 필요한 ‘똑같은’ 죄인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가리켜서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고 죄를 짓는 일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