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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님의 글

~ 연중 제 2주일 / 조명연 신부님 ~

2025년 1월 19일 연중 제2주일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아이와 노인의 기억력을 이렇게 비교합니다.


‘아이는 기억력이 탁월하지만 회상 능력이 없고, 노인은 기억력이 감퇴했지만 회상 능력이 있다.’


아이는 기억력이 좋아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잘 기억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겪은 일이 어떤 의미인지를 해석하지 못합니다. 회상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노인은 방금 전의 일은 잊어버리기 일쑤이지만, 긴 시간적 맥락 안에서 한 사건이 갖는 깊은 의미를 읽어냅니다. 회상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 기억은 가까운 것을 끄집어내는 활동이고, 회상 능력은 먼발치에서 대상을 지켜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전체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단순 기억 능력은 떨어지고 회상 능력이 커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나이 든 분은 단순 기억이 없어진다고 한탄하고, 또 젊은 사람은 나이 든 사람의 단순 기억 능력의 떨어짐을 보고 무시합니다.


좋고 나쁨을 떠나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하고, 상대를 인정하는 마음이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저 역시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전체를 바라보며 의미를 찾는 회상 능력은 점점 커지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단순 기억만 찾아서는 안 됩니다. 단순 기억만 쫓는 사람은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라는 말을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움이라는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카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십니다. 이 첫 번째 기적이 모든 사람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 것일까요? 죽은 사람을 살리신 것도, 중병을 고치신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 기적을 공개적으로 행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을 목격했던 것은 물독에 물을 가득 채웠던 일꾼들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첫 번째 기적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단순 기억을 떠나 회상 능력으로 그 안에서 새로움이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혼인 잔치는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즉, 기쁨의 자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삶이 혼인 잔치의 삶처럼 당신과 일치해서 기쁨의 자리로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삶이 매번 기쁨으로 가득하지 않습니다. 정반대의 슬픔과 괴로움으로 기쁨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도 합니다. 흥을 돋우는 포도주가 있어야 하는데, 포도주는 없고 물만 가득합니다. 이 물을 포도주로 만들 수 있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초대하고 또 함께해야 우리의 삶을 흥이 가득한 기쁨의 자리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서 그렇게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물이 주님을 통해 훌륭한 포도주로 변화됩니다. 따라서 물독 속에 물을 채우듯이, 주님 마음에 우리 죄를, 우리 미움을, 우리의 부족함을, 우리의 이기심을, 우리의 상처와 저주와 분노 등을 모두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주님께서는 가장 훌륭한 사랑의 포도주로 변화시키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꾹 간직만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남들도 그렇게 한다고,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면서 주님 마음에 우리의 부정적인 그 모든 것을 담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을 단순 기억으로만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보다 회상 능력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성모님께서 일꾼들에게 하신 말씀을 우리도 따라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오늘의 명언: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쉬지 않고 미세하게 균형을 맞춰간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들에 얼마나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일레인 스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