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연중 제2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예수님의 세례를 통해,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을 세상에 드러내주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때’를 미리 알려줍니다. 그 ‘때’를 이렇게 말합니다.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이사 62,5)
<제2독서>는 그 때에 성령께서 주시는 풍성한 선물, 곧 은사들에 대해 말해줍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참으로 풍부한 의미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의미 중의 하나는 ‘때’, 곧 “그리스도의 때”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영국의 3대 낭만파 시인 중의 한 명인 바이런이 옥스퍼드 대학 종교학 과목 시험을 칠 때 있었던 일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 논하라"는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열심히 답지를 쓰는데, 바이런만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감독관이 주의를 주었지만 시험 종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계속 멍 때리기를 계속하자 화가 난 감독 교수가 백지로 제출하면 영점처리 되고 학사경고의 대상이 되니 뭐든 써 라고 하니, 그때서야 그는 단 한 줄만 써놓고 유유히 빠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달랑 한 줄 답안지는 이 대학 신학과 창립이후 모든 교수들을 감동시킨 전설의 만점 답안지가 되었습니다. 그 한 줄은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을 붉히더라."!!!
이 이야기는 바로 ‘신랑이 신부를 만날 때’ 벌어진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곧 ‘혼인잔치가 벌어진 때’의 일입니다. 바로 ‘복음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네 개의 ‘때’가 암시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등장하는 ‘때’는 혼인잔치가 벌어진 날입니다. 곧 “사흘째 되는 날”(요한 2,1)입니다. “사흘째 되는 날”, 이 날은 시나이 계약과 연결됩니다. 곧 주님께서 모세에게 “셋째 날에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이 시나이 산에 내릴 것이다.”(탈출 19,11)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하느님의 영광이 시나이 산에서 드러났듯이, 카나의 혼인잔치에서도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때’임을 알려줍니다. 동시에, 이 날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사흘”만에 일어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신 일’을 가리킵니다.
또한, 이날은 세례자 요한이 증언한 날로부터는 ‘일곱째 되는 날’로서, ‘새 창조의 날’입니다. <요한복음>은 이 “첫 번째 표징”을 통해, 예수님의 공생활의 시작을 바로 ‘새로운 인류의 출현’으로 알려줍니다.
그 날은 다름 아닌 ‘혼인잔치가 벌어지는 때’입니다. 구약에서는 오늘 <제1독서>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당신의 신부라 칭합니다. 그러니 혼인잔치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이 하나로 결합되는 ‘때’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마지막 결정적 때가 벌어지는 십자가 아래에서도 아들과 함께 하셨듯이, 지금 공생활의 첫 시작에 함께 계십니다. 단지 함께 계실뿐만 아니라, 바로 ‘아들의 때’를 열어 가십니다. 성모님께서 먼저 이 ‘때’를 알아채시고, 예수님께 말씀하신다.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
<두 번째> 등장하는 “때”에 대한 암시는 마리아께서 알아채신 “포도주가 다 떨어진 때”(요한 2,3)입니다. 곧 ‘옛 계약이 의미를 상실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곧 새 포도주, 곧 새 사랑이 필요해졌고, ‘새 계약의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마리아께서는 포도주가 다 떨어진 바로 이 사실에서 ‘그리스도의 때’가 왔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는 동시에, 혼인잔치 집에 놓여 있었던, “유다인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요한 2,6)가 암시해주는 ‘때’이기도 합니다. ‘여섯 개의 돌 항아리’는 가혹하고 엄격한 율법주의의 경직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곧 하느님과의 맺는 관계에 사랑이 결핍되어 있음을 나타냅니다. ‘돌 항아리’는 결핍을 나타내는 숫자인 ‘여섯 개’ 이며, 모두 비어 있어서 더 이상 줄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결국, 결정적으로 십자가에 매달려있는 ‘일곱 번째의 항아리’에서 새 포도주가 흘러나와 온 세상을 적셔줄 ‘때’를 향하고 있습니다. 새 계약의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성모님께서는 포도주가 없다는 사실을 잔치 주관자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예수님께 알리신 것은 예수님께서 그 포도주를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곧 성모님께서는 포도주가 다 떨어진 바로 이 사실에서 “그리스도의 때”가 왔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 <세 번째> 등장하는 ‘때’는 바로 예수님께서 직접 밝히시는 ‘당신의 때’ 입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
예수님께서는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 자신의 때’가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이는 당신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에 일을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욕구에 의해서 활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뜻대로 활동하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결국, 어머니께서는 “때”를 구실 삼아 아들에게 거절당하십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조금도 무안해 하시거나 섭섭해 하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성모님께서는 요청하는 자세에서 순종하는 자세로 태도를 바꾸십니다. 비록 거절당했지만,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뜻이 아닌 아들의 원의에 모든 것을 맡기십니다. 이토록, 성모님께서는 명령이 있기도 전에, 이미 순명하십니다. 믿음 안에서 예수님을 이미 잉태하고 계셨듯이, 믿음 안에서 이미 예수님께 순명하십니다. 본문에서 제자들은 기적을 보고서 믿었지만, 마리아는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예수님의 권능을 믿으신 까닭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순명인가요? 이 아름다운 일은 이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순명’을 불러오는 참으로 아름다운 일로 번져갑니다. 그 순명이 바로 그 ‘그리스도의 때’를 불러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순명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순명의 3중주곡’입니다. ‘마리아의 예수님께 대한 순명’과 그 순명이 불러온 ‘마리아에 대한 예수님의 순명’, 그리고 ‘마리아와 예수님께 대한 시중꾼의 순명’입니다.
그리하여 과방장은 “좋은 포도주를 이제까지 보관하고 계셨군요.” 라고 선포하게 됩니다. 이것이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네 번째>의 ‘때’입니다. 그러나 묘한 것은 이 혼인잔치에서는 단지 과방장이 새 포도주를 맛보았을 뿐, 아직 그 누구도 아직은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요한 2,11).
그러니 이제 바로 지금이 그 ‘때’ 입니다. 과연, 지금이 새 포도주를 마셔야 할 ‘때’ 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함께 혼인잔치를 거행할 ‘때’ 입니다. 그래서 카나의 이 혼인잔치에는 ‘신부’가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가 그 ‘빈자리’로 초대받은 까닭입니다. 곧 우리가 ‘신부’로 초대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바로 오늘이 ‘신부로서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셔야 할 때’입니다.
결국, 카나에서 드러내신 이 표징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모든 이에게 드러나게 될 ‘예수님의 영광’을 미리 밝혀줍니다.
과연, 이제 우리가 새 포도주를 마셔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함께 혼인잔치를 거행할 때가 도래한 것입니다. 우리는 곧 “성찬례”에서 이 은혜로운 ‘사랑의 포도주, 새 계약의 포도주’를 마시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린양의 ‘신부’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신랑이 되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피와 몸을 영함으로서 예수님과 결합할 것입니다. 당신께서 건네주신 생명으로 혼인을 맺고 합혼주를 마실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거룩한 일인지요! 참으로 감격스런 날입니다. 오늘이 바로 우리의 혼배 날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거룩한 혼인축일을!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
주님!
새 포도주가 필요합니다.
제 안에 당신 사랑이 필요합니다.
당신 사랑에 취하게 하소서.
취하여 임과 함께 춤추게 하소서.
당신이 나의 신랑인 까닭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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