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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3주일 / 이수철 신부님 ~

연중 제3주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참 좋은 교회 공동체

“전례공동체, 한몸공동체, 해방공동체”

 

 

 

“새로운 노래를 주께 불러 드려라.

온 누리여, 주님께 노래 불러라.”(시편96.1)

 

 

 

너나할 것 없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작금의 험하고 힘든 세상입니다. 다음 두 성구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

2027년 서울세계청년대회 모토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르6.30)

지난 1월8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복음중 한구절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그리고 다시 시작하십시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다시 새롭게 시작함이 바로 파스카의 삶입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말씀 주일’이자 해외 원조 주일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 주일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2019년 8월30일 성 예로니모 축일에 선언하셨습니다. 성 예로니모의 두 말씀도 생각납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성경을 자주 읽으십시오. 그대의 손에서 거룩한 책을 절대 내려놓지 마십시오.”

오늘 방금 흥겹게 부른 시편 19장 화답송과 이어지는 시편 말씀도 흡사 말씀 예찬처럼 하느님의 말씀 주일에 잘 어울립니다.

 

 

 

“주여 당신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오이다.”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 돋우고,

주님의 가르침을 참되어 어리석음 일깨우네.”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말씀의 빛입니다. 참된 삶은 물론 공동체 형성에 말씀 공부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옛 현자 다산 정약용의 지혜도 우리의 말씀공부에 좋은 도움이 됩니다.

 

 

 

“파의 껍질을 벗겨야 속살이 드러나듯이, 공부의 핵심을 찾지 못하면 쓸모없는 지식만 머리에 쌓인다. 의리의 정밀함과 미묘함은 마치 파의 껍질을 벗기는 것과 같다.”

 

 

 

새삼 한결같은 말씀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삶의 진수를 깨닫고 참 좋은 공동체 형성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말씀의 은총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참 좋은 교회공동체를 발견했습니다. 사람은 공동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은 혼자가 아닌 더불어의 여정입니다. 누구나에게 공동체 소속 욕구는 본능적입니다.

 

 

 

첫째, 전례공동체입니다.

 

전례와 삶은 함께 갑니다. 전례가 삶의 꼴을, 공동체의 꼴을 만들어 줍니다. 가톨릭교회의 영성은 전례영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 제1독서 느헤미아서와 복음도 공동체 전례를 배경으로 합니다. 제1독서에서 율법학자이자 사제인 에즈라의 지도하에 온 백성이 몰문 앞 광장에서 공동전례에 참석합니다. 흡사 미사공동전례에 참석한 우리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에즈라는 성경을 읽고 백성은 모두 귀를 기울입니다. 에즈라가 위대하신 하느님을 찬양하자 온백성은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 화답합니다. 그런다음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합니다. 말그대도 경청공동체, 찬양공동체, 경배공동체입니다. 느헤미와 총독과 사제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은 감격에 벅차 우는 백성들을 위로하며 격려하니 그 내용이 참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술을 마시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들 하지 마십시오.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 조용히 하고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바로 주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한 현재인 “오늘” 미사공동전례를 통해 주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주님께서 공동체에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우리의 진짜 힘입니다.

 

 

 

둘째, 한몸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익집단도, 이념집단도 아닌, 하느님 중심의 살아 있는 유기적 한몸 공동체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요 우리는 하나하나 그 지체가 됩니다. 모두의 얼굴을 한데 모으면 그리스도의 얼굴이 됩니다. 우리는 모두가 그리스도의 수족에 속합니다. 사도 바오로가 바로 주님안에서 일치의 한몸 공동체의 진리를 설파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몸이 되었습니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몸의 지체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도록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어느 하나 반박할 수 없습니다. 고립단절의 혼자라는 환상이 지옥입니다. 우열의 비교가 아닌 상호보완의 한몸공동체요 혼자가 아닌 더불어의 여정입니다. 나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형제의 장점을 질투할 것이 아니라 자랑하고 고마워해야 합니다. 공동체가 붕괴되어가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이런 한몸공동체의 모델입니다. 한몸공동체를 육성하는데 공동전례의 영향은 절대적입니다. 그러니 전례공동체와 한몸공동체는 하나입니다.

 

 

 

셋째, 해방공동체입니다.

 

참으로 모두를 자유롭게, 행복하게 하는 해방공동체입니다. 바로 희년의 영성입니다. 희년은 기쁨과 자유와 해방의 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나자렛에서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면서 희년을 선포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도 2025년을 정기 희년(2024.12.24.-2026.1.6.)으로 선포하시며 칙서를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이 ‘희망의 순례자’가 되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희년선포의 내용이 장엄합니다.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말그대로 자유와 해방의 선언입니다. 말그대로 구원의 기쁜소식이요 모든 질곡으로부터 해방과 자유의 선언입니다.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희년의 영성이요 치유와 해방공동체의 실현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Today is the day). 언젠가 그날이 아닌 오늘 살아야 하는 희년의 영성, 해방공동체임을 예수님께서 분명히 하십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를 봉헌하는 ‘오늘!’ 마침내 희년의 기쁨과 자유, 해방이 복음이 실현되었다는 복음입니다. 참으로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매년, 매일이 희년이요,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참 좋은 공동체인 전례공동체, 한몸공동체, 해방공동체를 이루어 살게 해 주십니다.

 

 

 

“주님께 나아가면 빛을 받으리라.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34,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