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8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밤새 몰아치던 폭풍우가 물러난 아침, 파도에 휩쓸려온 불가사리가 해변에 수도 없이 널려 있었습니다. 해변을 걷던 어린 여자아이는 불가사리를 하나 집어 바다로 던졌습니다. 또 하나를 주워 그것도 바다로 던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한 노인이 다가와 말을 겁니다.
“꼬마야! 지금 뭐하니?”
“불가사리를 바다로 돌려보내고 있어요.”
“하지만 얘야, 이 해변에는 수십만은 못 되더라도 수만 마리나 되는 불가사리가 널려 있단다. 네가 몇 마리 구해준다고 별 차이가 있겠니?”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불가사리를 또 집어서 바다로 던졌습니다. 그리고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쟤한테는 큰 차이가 있죠.”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아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유명한 이야기를 알고 있어도 실천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 하나로 무슨 변화가 있을 수 있냐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고 서로 이야기하지만, 나 혼자만 지켜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랑 실천도 그렇습니다. 누구는 사랑을 실천한다고 누가 알아주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서 시작하는 사랑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온 인류가 구원의 길에 들어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주님께서 알아주십니다. 이렇게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이 주님의 편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알리지요.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라고 반문하시면서,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면서, “이들이 내 어미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생물학적 가족을 무시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보다 주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진정한 주님의 가족이 될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길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나라에서 새로운 가족이 이루어집니다. 이를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당신의 뜻을, 즉 사랑의 길을 걸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이는 삶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는 그 모든 것이 역전되고 맙니다. 당연히 지금 당장 사랑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이란 치과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아 있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있다(비스마르크).
사진설명: 성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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