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6일 연중 제3주일
초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칠 즈음 담임선생님께서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시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수업을 일찍 마치고 선생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인사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씩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제게는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명연이는 조용하고 집중을 잘하니까 커서 훌륭한 과학자가 될 거야.”
선생님의 이 예언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저는 과학과 전혀 거리가 먼 가톨릭 신부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말씀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마지막이라며 눈물 쏟으며 인사하면서 들었던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지금도 기억하는 말씀이었지만, 그렇게 살 수 없었습니다. 과학보다 신학이 더 좋았고, 세상일보다는 주님 곁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판단한다는 이유로 바뀐다면 어떨까요? 그 사람의 판단일 뿐이기에 그렇게 살면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습니다. 그 사람 삶이 아닌 나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이의 판단에 흔들리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세상의 판단보다 주님의 판단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주님의 판단보다는 세상의 판단을 따르려고 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판단에 흔들리면서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에서 목수로 일했습니다. 당시 부모의 일을 물려받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즉, 예수님도 목수로 사는 것이 당시 세상의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펴시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1,18.19)
그리고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십니다(루카 1,21). 모든 사람의 눈앞에서 오늘, 곧 지금 여기에 하느님께서 주님을 통하여 현존하신다는 기쁜 소식을 직접 보고 체험하는 은총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이제 완전한 하느님의 모습으로 이 땅에서 활동하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순간, 기뻐하셨을까요? 아닐 것 같습니다. 죄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이끄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힘든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당신의 수난과 죽음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힘차게 선포하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하느님 뜻에 따라서 이 세상에서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르심입니다. 하지만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또 못 본 척합니다. 그럴수록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 역시 주님처럼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세상을 쫓는 길이 아닌, 하느님을 쫓는 길. 이 길을 통해서만 구원의 길이 활짝 열려 있으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더 많이 사랑하는 것 외엔 다른 사랑의 치료 약은 없다(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사진설명: 오늘은 해외원조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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