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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5주간 금요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 함승수 신부님 ~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
마르 7,31-37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교는 혼자 도를 닦아서 깨달음에 이르는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며 그 말씀에 따라 사는 종교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구원의 진리가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여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귀와 입은, 즉 제대로 듣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형성하는 기본이자 필수적인 조건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귀 먹은 이’란 단지 물리적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가 아니라 귀가 있어도 편견과 고집 때문에 하느님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를 가리킵니다. 또한 ‘말 더듬는 이’란 음성적인 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가 아니라 입은 있지만 용기와 의지가 부족하여 하느님의 뜻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 버리는 이를 가리키지요.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듣기 싫은 말에는 귀를 막을 때 우리도 귀머거리가 됩니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해야 할 말은 하지 않을 때 우리도 벙어리가 됩니다. 그렇기에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분 뜻대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축복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귀 먹고 말 더듬는 이는 그런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단지 물리적으로 소리를 못 듣고 못 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그리고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쌓인 수많은 상처들 때문에 마음이 굳게 닫혀버려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병자를 치유하실 때처럼 그를 ‘말씀’으로 치유하지 않으시고 그만을 위한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그가 온몸과 마음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그의 아픈 부위를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신 것이지요. 슬픔과 괴로움으로 절망에 빠진 이에게 한 마디 말보다 옆에 같이 앉아 그의 마음에 공감해주고 어깨를 보듬어주며 손을 잡아주는 것이 더 큰 위로로 다가오는 것처럼, 예수님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그의 마음 속 더 깊은 곳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당신 손을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에게 ‘에파타’, 즉 ‘열려라’라고 외치십니다. 부정의 문을 열고 긍정의 길로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절망의 문을 열고 희망의 길로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미움의 문을 열고 화해의 길로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분노의 문을 열고 사랑의 길로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받은 상처들을 용서의 강에 흘려보내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과정에서 받은 상처들을 순명의 물로 씻어내어 활짝 열린 마음과 영혼으로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그가 자신을 세상에 옭아매는 부정적인 감정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열어주신 구원의 문을 통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에파타’해야겠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찬미를 하느님께 바치며 그분께서 누리시는 참된 기쁨을 함께 누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