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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부님들의 강론

~ 연중 제 5주간 토요일 / 송영진 신부님 ~

<연중 제5주간 토요일 강론>(2025. 2. 15. 토)(마르 8,1-10)

 

복음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1-10
1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2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3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4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5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7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8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9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10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1) 군중이 예수님 곁에 머무르고 있었던 사흘 동안 예수님과 제자들과 군중이 모두 계속 굶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흘 동안에는 먹을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먹을 것이 없는 상황입니다.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저들을 돌려보내면, 저들은 집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이고, “집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저들을 먹인 다음에 보내야겠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따로 언급되어 있는 ‘먼 데서 온 사람들’이라는 말은, 이 이야기 속에서는 특별히 중요한 뜻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먼 데서 온 사람들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군중은 모두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가다가 길에서 쓰러질 것이라는 상황.>

2)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의 집에 도착하지 못하고 길에서 쓰러지는 것을 걱정하시는데, 바로 그 걱정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마태 6,25) 라고 말씀하셨으면서도 당신은 왜 걱정하시는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산상 설교의 “걱정하지 마라.” 라는 가르침을, “걱정은 ‘내가’ 할 테니,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산상 설교의 “걱정하지 마라.” 라는 말씀의 끝부분에 바로 그 말씀이 있습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

 

이 말씀은,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걱정하지 마라.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은 ‘주님의 힘’으로 하면 된다. ‘주님의 힘’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은 주님께 맡겨 드려라. 너희는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여라. 너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말씀을, “걱정은 ‘내가’ 할 테니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로 생각하면, 이 말씀은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8).” 라는 말씀에 연결됩니다. 하느님은, 또 예수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먼저 알고 계시고, 그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예수님께서 먼저 아시고, 사람들이 걱정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걱정하시고,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청하기도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그것을 준비해서 주신다는 가르침입니다. 사람들이 가엾다는 예수님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분명히 ‘걱정’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걱정만’ 하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빵의 기적’을 계획하고 계셨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요한 6,6).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이신 분’으로 믿고 있습니다.>

3)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라는 제자들의 말은, 표현으로는 “이 광야에서 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인데, 제자들이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마르 6,35-44)을 기억하고서 한 말이라면, 이 말은 “주님의 기적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라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4)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기적의 빵’은, 집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일용할 양식’입니다. ‘집’을 ‘하느님 나라’를 상징하는 말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마다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힘’을 달라고 청하는 것이고, ‘하느님 나라’에 잘 도착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부자로 만들어 달라고 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인에게는 그 나라에 잘 도착하기 위한 ‘힘’ 말고는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사실 세속의 권력이나 부유함이나 명예 같은 것은 그 나라에 들어가는 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되는 것들입니다. 만일에 세속의 권력이나 부나 명예 등을 얻기를 바라면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 생활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